주로 챙겨 보는 언론들의 새해 기획에 ‘청년’이 눈에 띈다. 정부 노동개혁부터 청년수당 논란까지 해를 넘긴 현안도 있거니와 총선이 다가오니, 올해도 청년 문제가 사회 전체 화두가 되려나 싶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사실 걱정이 앞선다.

정치와 경제의 이해득실이 충돌하는 싸움터에 청년이 방패처럼 쓰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최근 몇 년의 큰 선거에서 정치권은 어김없이 청년들이 불러 세웠다. 대통령은 신년 대국민 담화에서도 젊은이들의 희망을 빌려 왔다. 안보와 경제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일자리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며 노동개혁 필요를 강조했다.

문득 1년 전이 궁금하다. 2015년의 새해는 어떠했는지 떠올려 봤다. 그때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정서는 ‘저성장’에 따른 위기감이었다. 올해 청년을 선택한 신문은 당시 저성장 이슈를 1면에 올렸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불평등을 키우고 분배를 포기하면서까지 양적 성장을 추구해 왔다. 정부가 직접 지휘하고 수출 대기업이 이끄는 ‘성장의 시대’를 보냈다. 그 결과 국민 한 사람에게 평균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득의 몫이 3만달러 가까이에 이르게 됐다. 물론 수학적인 값일 뿐이다. 그 돈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1인당 국내총생산 3만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안개가 갑자기 걷힌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저성장 위기’다. 2008년 미국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도 한국만은 살짝 비켜 간 것처럼 보였지만 2010년대 초반부터 나타난 불길한 조짐은 곧 현실이 됐다. 우리는 이른바 장기 저성장 시대를 숙명으로 맞이했다.

끝없는 성장을 생존 주문으로 삼아 왔던 사람들, 그러니까 국가경제를 위해 개인의 삶과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을 헌신으로 믿어 왔던 이들에게 ‘저성장’이라는 한마디는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정부는 2014년에 시작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4대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대통령은 국민소득 4만달러를 향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뼈를 깎는 혁신의 노력을 온 국민에게 주문했다. 한국전쟁과 외환위기의 상처 위에 ‘위기’야말로 현 집권세력의 가장 큰 정치적 자원이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은 4대 개혁 중에서도 ‘노동개혁’을 강행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경제적 상황의 최대 피해자로 ‘청년’이 명분으로 쓰였다.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구호는 노동시장 안에서의 제로섬(Zero-sum) 게임을 작동시켰다. 위기를 극복하는 모든 책임이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됐다.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쏙 숨어 버렸다.

정부·여당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와중인 2015년 12월30일 정부는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노동개악은 이미 시작됐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벌어진 20대 희망퇴직 사건은 세밑에 크게 화제가 됐다. 남아 있는 법안들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획정 논의의 재물로 쓰일 상황에 놓였다.

우리는 이렇게 2016년을 맞이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2%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꾸준히 회복세를 보인 미국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며, 한국 기준금리도 현재 수준에 머물기 어려워졌다. 수출경제도 민간소비도 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런 분석에 기초를 두고 경제위기론이 대두하고 있다. 부채 확대와 수출 대기업 중심의 대처법으로 유예시켜 둔 위기가 밀려오는 형국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성취한 지 30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20년을 앞두고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경제위기는 언제나 더 약한 존재의 삶을 더 심각하게 파괴한다. 경제위기는 항상 보통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킨 대가로 극복된다. 기업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해법이 어떤 결말을 낳는지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2016년은 갈림길이다.

이제 총선이 90일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청년유니온은 7년차를 맞이하며 4기 임원을 뽑는 선거를 시작한다. 두 개의 선거를 앞둔 2016년 새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염돼 버린 ‘희망’이라는 말의 가치를 다시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온갖 비관 속에서도 청년에게 ‘작은 승리’의 경험을 안기는 2016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았으면.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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