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16~2017년은 한국 경제의 중장기 변화 방향이 결정되는 정치·경제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재벌 중심 경제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사회적 제도가 한계에 부딪힌 지금, 어떤 세력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이끌지 첨예한 쟁점이 될 것이다.

수출재벌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이 가혹하게 이뤄지며 총·대선을 매개로 한국 경제의 발전전망을 둘러싼 대중적 논쟁이 예상된다. 또한 새누리당 장기집권 가능성 확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붕괴 속에 이를 대체할 정치세력 간 투쟁 역시 격렬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자. 먼저 세계경제.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미국 경제만 나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2015년 미국이 5% 성장할 동안 유로존은 2%, 일본은 마이너스 0.4%에 그쳤고, 중국은 지난해 7% 성장률이 무너져 6%대를 기록했다. 신흥국 중에는 인도만 같은 기간 1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브라질과 러시아는 각각 마이너스 1%, 마이너스 2%로 뒷걸음질했다.

미국이 나홀로 성장한 건 전 세계 자본가들이 미국으로 국부를 유출한 결과다. 2012년 초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3년 반 동안 자본가들은 미국이 해외에 투자한 것보다 2조8천억달러만큼 더 미국에 투자했다. 자본 순유입 규모가 역사상 최대치다. 자본가들은 미국 중앙은행이 민간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달러를 보유하기 위해 자기 나라 국부를 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미국의 성장은 다른 나라의 자본 유출, 즉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불황의 대가란 얘기다.

미국 경제학계에서는 호황보단 오히려 장기 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고용량이 함께 저조하다는 사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2007~2015년 노동생산성과 고용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1.7%와 0.4%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성과 고용량이 모두 이렇게 긴 기간 낮은 적은 없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성장이 실제 산업적 성장을 배경으로 한 게 아니고 현재의 성장이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한국은 금융세계화 붕괴 효과가 2013년 이후 나타나며, 최근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당장 2014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수출재벌들의 침체와 구조조정이 올해와 내년에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수출재벌들의 성장에 힘입어 2007~2010년 세계 금융위기를 빠르게 빠져나온 것은 물론 2010~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상위권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 수출재벌들의 매출과 수익 증가는 세계경제의 탄탄한 성장이 아니라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국 경제의 벼락경기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기업들의 부진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2010~2013년 매출과 수익 증가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착각한 재벌들은 90년대 초반과 비슷하게 사업을 확장해 현재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구조조정을 진행 중에 있다.

재벌들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수준까지 낮아져 있다. 2014년을 보면 삼성과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30대 재벌의 자본수익률은 2%에 불과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5%인 것을 감안하면 재벌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바닥인 셈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그래도 여전히 9~10% 수익률을 기록 중이지만 14%에 이른 2010년에 비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재벌들이 96~97년과 비슷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정부 정책은 최근 수출 감소가 기업 경쟁력이 아니라 세계적 소비 감소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주소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특히 재벌들이 일시적 호황을 장기 호황으로 착각하고 저질러 놓은 2010~2013년 투자가 문제인데, 이는 정부가 생각하는 정도의 미시적 인수합병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단 4년간 30대 재벌 자산은 자그마치 두 배가 늘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2000년대 부흥했던 러시아나 브라질 같은 신흥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가망도 없고, 본격적 성장률 둔화에 진입한 중국이 다시 대대적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도 없다. 세계경제가 이 정도로 수축 중인데, 한국 수출기업들의 비용경쟁력을 조금 높여 준다고 과잉투자로 인한 손실을 메꿔 줄 순 없다.

경제상황을 보면 긴축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을 박근혜 정부의 재정정책은 수출재벌 편향적이지만, 그렇다고 수출재벌을 살릴 만큼 효과적인 건 또 아니다. 서민만 죽어 나가는 정책이다. 수요가 대부분 해외에 있는 수출재벌들에게는 내수를 위한 정부부채 증가보다는 원화 가치를 안정화할 엄격한 긴축이 좀 더 유리하다.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0%, 공공부문 부채는 100% 정도다. 유로존 국가들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긴 하지만, 기축통화가 아닌 통화를 사용하는 나라들만 놓고 본다면 결코 낮다고도 할 순 없다. 정부가 제대로 된 재정정책을 쓰려면 재벌과 부자들에 대한 재분배 정책이 동반돼야 하는데, 정권의 성격상 가능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부는 부채관리에 주력하며 노동시장 유연화로 수출재벌들의 인건비나 낮춰 주는, 그야말로 경제위기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만 죽어 나가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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