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9·15 노사정 합의 파탄을 선언한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에 대해 무기한 논의하자는 한국노총 요구를 일축했다. 대신 2개 지침 시행과 관련해 공정성이 의심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여론몰이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일주일 동안 정부 태도 변화를 지켜보겠다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탈퇴를 유보했지만 파국을 피할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는 형국이다.

노동부 2개 지침 워크숍 한국노총에 제안

이기권 장관은 12일 오전 서울 한 음식점에서 노동 관련 주요 학회장과 국책연구기관 대표들과 신년인사회를 했다. 이 장관은 전날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 파탄을 선언하면서 “2대 지침에 대한 시한 없는 협의”를 대화 유지 조건으로 제시한 것에 대해 거절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도 노동개혁 실천이 계획보다 늦어진 상황인데 기간을 정하지 않고 논의하면 대타협 실천이 무한정 지연돼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이날 정오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위원 간담회에서는 “금주 중이라도 1박2일 워크숍을 해서 (정부가 발표한) 지침이 판례대로 마련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갖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 장관의 제안을 한국노총에 전달할 계획이다.

두 개 지침에 대한 무기한 논의는 불가하고 동시에 기존 정부안을 토대로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동부 '답변 유도 설문조사'로 여론몰이

노동부는 여론몰이에 나선 모양새다. 노동부는 ㈔한국인사관리학회(회장 정범구 충남대 교수)에 의뢰해 2개 지침과 관련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국민 70.0%는 임금피크제 도입시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절차 마련에 찬성했다. 저성과자에 대한 개선기회 부여 후 계약을 해지하는 인사관리 방안에는 54.2%가 동의했고 24.4%가 반대했다.

그런데 인사관리학회는 설문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서는 취업규칙 변경이 필요합니다. 취업규칙 변경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에 동의하십니까” 또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배치전환과 충분한 교육훈련을 통해 개선의 기회를 주고, 그래도 성과향상이 없는 경우에 계약해지하는 등의 인사관리 방안에 대해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지침·가이드북 발표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나 해고가 쉬워질 것이라는 노동계·전문가들의 우려가 만만찮은데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답변을 유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저성과자를 선정하는 평가체계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는데도 “직장 내에서 공정한 평가체계를 구축해 보상·교육·훈련전보 등의 인사관리제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했다.

한국노총 “백지화 없이는 정부 안 만나”

지난 11일 한국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9·15 노사정 합의 파탄선언을 하면서도 투쟁계획 발표를 일주일 미루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노동부는 "만나서 대화하자"고 한국노총에 요구했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12일 한국노총에 이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권 장관이 2개 지침 논의를 위한 워크숍을 제안한 것도 만나자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 노동부가 대화 유지를 위한 한국노총의 전제조건을 사실상 거절하고 여론전에 나서면서 그 가능성은 되레 줄어들었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9·15 노사정 합의 직후 장관이 두 개 지침에 대해 지겹도록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않았다”며 “원점에서 시작해 무기한 논의를 하지 않는 이상 정부를 직접 만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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