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7 토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민주노총 법률원의 노동자이야기
일반해고가 불러올 일들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 차승현 변호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요즘 노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아무래도 저성과자 일반해고 문제다. 이른바 저성과자에게 일정한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적합한 업무로 배치했음에도 개선 여지가 없거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해당 노동자에 대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 사용자가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일반해고의 요지다.

자본가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직장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입사에서 퇴사까지 쥐고 흔드는 말 그대로 사장님들의 천국이 될 모양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런 논의나 타협 없이 일반해고를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독선의 결과로 나올 일반해고 지침과 이로 인해 변하게 될 사업장 모습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너무도 빨리 시대를 앞서 가 버린 한 회사의 사례를 소개해 주면 대부분 일반해고가 불러올 참혹한 사업장 모습에 공감하곤 한다.

노동자 A는 국내 굴지의 물류회사에 입사해 배송관리 전문가로 일해 왔다. 노동자 A도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에는 속수무책이어서 회사 강압에 못 이겨 여러 차례 회사를 옮겨야 했지만 바뀐 건 회사 이름과 사장뿐 20년 가까운 세월 동일한 물류창고에서 변함없이 그리고 성실히 근무해 왔다. 그렇게 일하는 장소는 바뀌지 않은 채 여러 번의 불법파견과 전적을 거쳐 입사하게 된 B회사는 물류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입사 초기 A에게 배송관리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비롯해 배송관련 주요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A가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A가 담당하던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마무리됐다. 근속연수가 높아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은 A보다 적은 임금으로 관련 업무를 수월히 처리할 수 있는 직원들이 생겨나자 B회사는 A를 기존 물류관리업무가 아닌 창고관리와 현장시설물 안전점검 업무로 배치발령을 했다. 여태껏 해 보지 못한 새로운 업무였다.

A가 현장관리 업무로 배치될 때의 구체적인 배치사유는 “업무능력 부족”이었다. B회사는 물류업무와 관련해 새로운 전산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A가 전산프로그램에 대한 처리능력이 부족하고 전산프로그램과 유관한 컴퓨터 활용능력이 떨어져 더 이상 배송관리 업무를 담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A를 따라다닌 '업무 부적응자·저성과자' 낙인은 그 뒤 두 차례나 이어진 새로운 배치발령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A는 B회사에 의해 결국 영수증 처리도 못하는 직원으로 평가되고 말았다. B회사는 A에게 하청업체인 C회사로의 전적을 강요했지만 물류관리만 했던 A로서는 직접 물건을 운반해야 하고, 늦은 나이에 지게차 운전면허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하는 하청업체로의 전적이 엄두가 나지 않아 이를 거절했다. 끝내 하청업체 전적을 거부하자 B회사는 A를 업무능력 부족 등의 이유로 6개월간 대기발령했다.

대기발령 기간은 A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A에게는 역량향상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물류업무와 관련한 기초적인 업무지식,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역할과 이를 위해 갖춰야 할 역량 등을 주제로 보고서를 제출하는 업무가 부여됐다.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컴퓨터도 없이 책상과 의자만 주어졌다. 함께 대기발령됐던 동료는 한 달을 못 버티고 하청업체로 전적했지만 하청업체에서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A는 매일매일 자필로 작성한 보고서와 독후감을 제출하고, 관리자의 “지게차 운전면허나 따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6개월을 꿋꿋이 버텼지만 대기발령 기간이 끝나는 당일 B회사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다.

B회사 사례는 저성과자 일반해고에 대한 공세가 전면화되기 수년 전에 발생한 일이지만 저성과자 대상자 선정, 교육훈련 기회 제공, 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까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반해고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일반해고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B회사는 “A에 대한 해고는 사실상 징계해고에 해당하며 징계절차를 지키지 않은 잘못이 있어 징계의 정당성을 살필 것도 없이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본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A는 판결을 통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정부 주장처럼 사용자가 저성과자로 낙인찍은 노동자와 고용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통념이 가이드라인 하나로 만들어질까라는 회의적 시각으로 일반해고 제도를 바라볼 단계는 이미 지났다. 앞으로 A와 같은 행운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차승현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차승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