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공기업에 인건비 예산 불이익까지 언급하며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을 압박하고 나섰다.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밀어붙였을 때와 비슷하다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팽배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민간 전문가 초청간담회에서 "금융개혁을 체감하려면 금융권에 성과주의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대우를 받도록 (임금체계를) 차등화해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공공부문이 선도해서 성과주의가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조를 설득하는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호봉제 중심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로 개편하는 것을 금융개혁의 골자로 삼고 있다. "노조를 설득하겠다"던 임 위원장이 다른 손에는 채찍을 든 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금융공기업의 올해 총인건비 예산을 전년 대비 평균 2% 인상하되 그중 절반은 각 기업의 성과주의 도입계획에 맞춰 집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임금을 깎겠다는 것이다.

임금 불이익은 물론 사내복지기금 지급 금지, 경영평가·기관장 평가 불이익 같은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14년과 지난해 1·2차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당시에도 예산·경영평가를 이유로 금융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복리후생 삭감과 임금피크제를 강제했다.

금융노조 소속 한 금융공기업 지부위원장은 "2년 전 공공기관 정상화를 한다며 복리후생을 축소할 때도 '말 안 들으면 예산 안 준다'거나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툭하면 (금융공기업들을) 모아 놓고 협박하는데 설득하거나 대화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융위가 노사 자율로 결정하는 임금체계까지 관여하면서 되레 금융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수강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성과주의는 직원들 간 경쟁과 은행 간 자산확대 경쟁을 불러일으켜 리스크를 끌어올릴 수 있다"며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할 금융당국이 앞장서서 성과주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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