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장관의 합의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말하는 것처럼 ‘외교적 성과’이고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일까.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면 신의를 어기는 행위가 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끝나는 것일까. 과연 피해자 할머니들의 개인청구권은 법적으로 해결된 것일까.

아니다. 양국 정부 간 합의는 어떤 국제법적·국내법적 효력도 갖지 못한다. ‘한국민’의 민족적 자긍심을 훼손한 외교적 참사일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가 배제된 ‘합의’로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약 20만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조직적 강간과 성노예 범죄다.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이자 ‘반인도적 불법행위’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와 같은 국가범죄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구제는 수사·사법 과정에서 피해자 참여를 통한 피해배상,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 등 유엔 인권피해자 권리장전,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이 정한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피해회복을 그 시작과 최소한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협상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피해자는 문제해결의 ‘대상’ 혹은 지원의 ‘객체’로 치부됐다(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성명). 처음부터 피해자를 배제한 이번 합의는 국제인권기준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처리에 있어 어떠한 국제법적 효력도 갖지 못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을 약속한 이번 합의는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다. 피해 당사자들이 가해 당사자국인 일본국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권리, 즉 피해자 개인의 재산적 권리를 박탈해 버리는 반사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비판마저 자제한다고 약속함으로써 전쟁범죄를 비난할 수도 없는 처지로 만들고 있다.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향후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게 만든 이번 합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로 국내법적으로도 효력을 갖지 못한다.

아베 총리는 이번 합의에 대해 “이번에 한국 외교장관이 TV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고 그것을 미국이 평가한다는 절차를 밟았다”며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끝난다”고 했고, 양국 간 재산청구권에 대해선 “법적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번 합의에서도 아무런 변경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양국 정부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는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하고,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반사회질서를 조장하는 합의다. 아베 총리가 말한 것과는 정반대로 이번 합의를 어기면 (어긴 자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의 관념에 반하는 위 합의를 지시한 양국 정부의 수반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이길 포기한 것이다. 국제법적·국내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는 이번 합의로 누구의 권리도, 누구의 비판도 제한하지 못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합의가 필요한가. 첫째,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려 한다면 침략전쟁의 주모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신사를 폐쇄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국의 침략전쟁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은 일본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전제로 한다. 일본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했던 주요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법적 처단과 역사적 청산작업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을 주도했던 전범들을 처단하기는커녕 이들의 위패를 모아 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를 지속하고 있다. 침략전쟁의 주모자들을 단죄 대상이 아니라 참배 대상으로 삼아 국가적 영웅으로 숭배하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 지극히 수사적인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려면 위안부를 주도했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역사적 평가,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법적 책임 인정, 그리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다. 가해자들을 숭배하는 상태에서의 사죄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반성과 물질적 보상이란 그 자체로 기만일 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손실보상 문제로 격하시켜 피해자들의 명예를 영구적으로 짓밟는 행위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관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잘 풀어 나가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밝히면서 아베 총리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정치적 담합과 고작 10억엔의 기금 출연으로 일본국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 이번 합의는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행적 역사인식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우리는 어느 날 국정교과서에서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남다른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려 한일관계를 정상화시키는 외교적 합의(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큰 성과를 거뒀다”는 칭송을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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