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호 변호사(울산지역연대기금 대표)

408일. 고공농성을 벌였던 차광호씨가 땅으로 내려오는 데 걸린 기간이다. 아직도 서울에서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0일을 훌쩍 넘겨 하늘에서 농성 중이다. 통계상 분규 사업장과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든다는데 장기투쟁 사업장은 그대로다. <매일노동뉴스>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울산지역에는 1994년 현대중공업 해고자들부터 2014년 현대자동차 해고자까지 12개 사업장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2011년 2월 박현정 전 효성노조 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하면서 더 이상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동의 실천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는 고민이 제기됐다. 이러한 고민은 2011년 3월 박현정동지추모사업회를 발족하면서 “구속·수배·해고노동자와 어렵게 활동하는 지역활동가 등 세상을 바꾸고자 투쟁하는 동지들의 건강·문화를 비롯한 삶을 지원하는 사회적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황폐해져 가는 해고자들의 삶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이들이 계속 투쟁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박현정동지추모사업회는 ‘제2의 박현정을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울산지역연대기금을 구성하기로 하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와 공동으로 울산지역연대기금 사업을 추진했다. 연대기금은 2014년 8월29일 발족했다.

해고는 자본에 저항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의 후퇴는 결과적으로 해고의 고통을 개인에게 전가하면서 방치하고 있다. 공동 책임을 위한 조직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해고자가 더 이상 피폐해지지 않도록 삶을 극단으로 가져가지 않도록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연대기금은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하다 해고·수배·구속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차비와 밥값’이 없어 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외롭고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지 않게 소통하고 서로 격려하는 행동을 실천하려 한다.

연대기금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울산지회와 평화와 건강을 위한 울산의사회(평건사),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 울산지부 등 의료 3단체와 노동과 인권을 위한 연대 협약을 맺고 해고자와 활동가들의 건강검진·치과검진을 통한 치료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활동비 지원사업과 투쟁사업장 연대사업, 심리치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연대기금 회원은 단체를 포함해 500여명이다. 지난해 5월 기준으로 900여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 이 후원금으로 14명의 해고자와 울산지역 활동가들에게 매월 30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 최소 수준의 차비와 식비다.

장기간의 해고생활과 노숙농성, 그리고 기본생활만 가능한 활동가들에게 치과치료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 있다. 연대기금은 건치와 함께 해고자들과 활동가, 해고 상태나 다름없는 장기투쟁 사업장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치과검진을 진행했다. 그중 섭식이 어렵고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되는 대상자를 선정해 5월부터 치과치료를 진행해 현재 완료한 상황이다.

2014년 10월부터 4월 말까지 38명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장기 해고자들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 평건사·건약과 함께 정기적인 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 유무를 떠나 검진사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검진을 받은 38명 중 50% 이상은 크고 작은 위장 및 혈관 관련 질환을 겪고 있었다.

약제장기복용자도 꾸준히 챙길 것이다. 연대기금의 이런 크고 작은 사업들이 서로 위로가 되고, 동지가 되고, 작은 방어막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 하겠지” 혹은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내가 해야” 나와 우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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