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지연 변호사(법무법인 여는·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5.9.15 선고 2014가합25188 판결

1. 사건의 경과
가. 빙그레는 1998년 물류부문만을 분사해 KNL물류라는 물류계열사를 설립했다.
나. KNL물류는 2002년께부터 전국 12개 지역 물류센터 사무관리직원들을 남겨 둔 채, 현장작업을 소사장제로 전환했다.
다. KNL물류는 2013년경부터 소사장제를 폐지하고, 소사장업체들이 담당하던 현장작업을 순차적으로 아웃소싱업체에 위탁하기로 했다.
라. 이 사건 원고들은 1980년대 빙그레에 입사해 빙그레 광주공장에서 생산된 유음료나 스낵제품을 창고에 입·출고하고 전국 각지로 이송하는 차량에 상·하차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직원으로 수십 년째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마. 그러나 원고들의 소속은 퇴사와 재입사 형식으로 계속 변경돼 왔다. 1980년대부터 1998년까지는 빙그레 소속, 1997년부터 2003년 11월까지 KNL물류, 2003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는 이천물류(KNL물류 광주센터의 소사장업체) 직원으로 변경됐고, 2014년 3월25일 아웃소싱업체인 애드민시스템즈로의 전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해고(재계약 미체결)됐다.

2. 법원의 판단
(1) 사업운영의 독립성
소사장사인 이천물류는 KNL물류의 방침에 따라 작업반장에 의해 설립됐고, KNL물류의 외부 도급방안 도입 이후 폐업했다. 원고들은 KNL물류의 근무복을 입고, 사무실·창고를 함께 사용했으며, 지게차·팰릿·책상·전화기·컴퓨터 등 각종 시설과 장비를 빙그레 또는 KNL물류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사용했다. 이천물류에는 기업조직에 필수적인 인사·경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나 직원이 없었고, KNL물류가 이 업무를 대신 수행했다.

(2) 작업수행 과정
이천물류는 오로지 KNL물류의 업무만 위탁받아 수행했고, 원고들은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했다. 원고들은 KNL물류가 지정하는 시간·장소에 지정하는 제품을 적재하고, 부적당하다고 지적하는 사항을 지체 없이 시정했다. 당일 입·출고 작업결과를 KNL물류 관리자에게 통보하는 등 구체적인 작업방식에 관해 KNL물류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업무를 수행할 계약상 의무가 있었다. 실제 KNL물류가 작성한 작업전표와 배차계획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

(3) 노무관리
이천물류의 계약직 직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KNL물류가 정한 절차에 따라 소사장 및 KNL물류 부서장의 평가를 거쳐 이뤄졌다. KNL물류는 소사장·반장 교육을 실시했으며, 원고들을 대상으로 교육훈련일지를 작성했다. 이 회사 담당직원 및 팀장은 소사장과 이천물류 직원의 사고보고서를 징구해 결재했고, 원고들의 휴가신청서를 결재했다. KNL물류는 자신이 사용하는 임금계산 프로그램에 자신이 정한 호봉표와 취업규칙상의 기준, 지문인식기로 수집된 출퇴근·휴무 정보, 소사장이 관리하는 수기 출근기록부상의 근무내역을 반영해 원고들의 임금을 산정해 줬다.

(4) 근로조건의 결정
KNL물류는 2013께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하면서 ‘소사장 기업은 KNL물류 현장직과 동일한 정액 인상’을 결정했고, 이에 따라 원고들의 기본급이 인상됐다. KNL물류의 주 40시간제 도입안에 따라 원고들의 근무시간과 근무조가 변경됐다. KNL물류는 소사장 기업 직원들에 대한 각종 복리후생 제공을 결정하고, 소사장 기업의 휴가제도를 결정했으며, 소사장 기업의 급여체계 즉 기본급·각종 수당·호봉을 설계하고 관리했다.

(5) 결론
이천물류는 독자적인 사업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조직·영업망·물적 설비·자본을 갖추지 못해 사업자로서의 독자성과 독립성이 없고 KNL물류의 한 부서와 다를 바 없어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원고들과 KNL물류는 묵시적 근로관계에 있다.

3. 판결의 의미
가. 소사장 기업을 통한 위장도급 사례를 확인한 판결
우리 법원은 단순한 근로자에 불과했다가 어떤 계기로 하나의 경영주체로서의 외관을 갖추고 도급계약을 맺는 방법으로 종전과 동일한 내용의 근로를 제공하게 된 경우(이른바 소사장 형태를 취한 경우) 사용종속관계에 대한 일련의 판단기준을 정립해 왔다.1) 이 사건 판결은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 법원이 정립해 온 묵시적 근로관계 성립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의 의미에 부합하는 판결이다.

나. 과연 소사장이라는 형식만의 문제인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소사장 기업이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 여부’ 즉 ‘사업운영의 독립성’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건을 진행하는 내내 이것이 과연 소사장이라는 계약당사자 형식만의 문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는 곧 KNL물류가 소사장제 폐지 이후 도입한 아웃소싱업체로의 외주화는 과연 진성도급인가라는 의문이기도 하다.

도급계약과 노동력의 사용관계(묵시적 근로관계 또는 근로자파견)를 구분하는 기준은 크게 ‘계약의 목적’, 계약 당사자(기업 실체), 계약의 이행으로 분류할 수 있다. KNL물류는 애초 빙그레로부터 물류부문을 분사해 설립된 회사이다. 분리 불가한 단위다. 이는 KNL물류가 사무관리 직원들을 남겨 둔 채 현장직원들만 외주화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현장직원들의 업무는 회사의 업무와 구분될 수도 없고, 위탁할 만한 내용상 ‘특정성’도 없다. 수탁인의 고유한 부분이라고는 ‘노동력의 제공’밖에 없다. 위탁계약서가 근로계약서처럼 작성된 것도, 실제 KNL물류가 작성한 작업전표나 배차계획에 따라 업무가 수행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계약의 목적’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KNL물류의 현장직원 외주화는 분리 불가능한 영역의 명목상 분리고, 사용종속관계일 수밖에 없다.2)

다. 묵시적 근로관계의 보호 강화 필요성
최근 KNL물류뿐만 아니라 동양시멘트와 대한석탄공사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위장도급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묵시적 근로관계는 근로자 파견보다 직접적인 사용종속관계임에도, 불법파견에 적용되는 고용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명령-과태료 부과’ 조항이 묵시적 근로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 입법적 공백 때문에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원고들은 2014년 6월11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으로부터 위장도급 판정(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을 받았다. 그러나 성남지청의 최종 조치는 ‘불법파견이 아니므로 내사 종결’이었다.

노동부의 위장도급 판정이 내려진 경우에도 확정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수년 동안 사용자의 위장도급의 외관을 창출하는 위법행위가 방치된다면, 불법적인 사실상태를 시정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이 사안에서 KNL물류도 소송이 계속되는 동안 소사장제에서 아웃소싱업체 외주화로 전환했다). 묵시적 근로관계와 불법파견·근로자공급·용역은 개별적으로 규율되기보다 ‘직접고용의 원칙’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어야 하고, 원청의 불법행위(위장도급)가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이 요망된다.

각주
1)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스스로 종전의 근로관계를 단절하고 퇴직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의사에 반해 강제적·형식적으로 소사장의 형태를 취하게 됐는지 여부, 사업계획·손익계산·위험부담 등의 주체로서 사업운영에 독자성을 가지게 됐는지 여부, 작업수행과정이나 노무관리에 있어서 모기업의 개입 내지 간섭의 정도, 보수지급방식과 보수액이 종전과 어떻게 달라졌으며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모기업 소속 근로자에 비해서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여부 등(대법원 2004.3.11 선고 2004두916 판결)을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소사장 기업이 사업주로서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여해 기존 기업의 한 부서와 동일시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근로자는 기존 기업과 사용종속관계에 있다고 평가되는 경우에는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2.11.26 선고 2002도649 판결)

2) KNL물류는 화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물류업의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만일 도급인이 행하는 사업의 특수성 때문에 도급관계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근로자파견이나 근로관계가 필요하다면, ‘그에 합당한 법적 형식’을 통해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법질서에 합치하지, 그러한 사정이 있다고 해서 근로관계로 봐야 할 노무제공관계를 도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위장도급의 판단’, 최은배, 노동법연구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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