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국립국어원은 국어사전에서 ‘지입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운수회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거기서 일감을 받아 일을 한 후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

국립국어원은 위 단어를 2003년에야 국어사전에 등재했지만, 실상 우리 사회에서 지입제는 만만치 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정확한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에 사업용 화물자동차가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미국이 한국 정부에 군용트럭을 판매한 때로 보고 있다. 당시 정부는 민간에 차량을 불하하면서 이를 구입한 차주들에게 곡식이나 석탄 등을 운반하게 했는데, 이것이 지입제의 출발이다. 이처럼 태생부터 지입제와 함께한 화물운송시장은 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화물자동차를 소유한 중소차주들이 자본의 한계를 느껴 운송업체에 위탁해 화물차량을 운영하는 형태가 일반화됐고, 이것이 현재의 지입제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물운송 거래구조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화주와 차주 사이에 운송업체 또는 주선업체·운송업체가 단계적으로 끼어 있는 식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의하면 “화물운송시장에서는 업체의 영세성·영업상 필요성·거래정보 폐쇄성 등으로 다단계 거래행위가 많이 행해지고 있으며, 택배화물운송을 제외하면 주선업체와 운송업체에 의해 다단계거래가 형성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화물운송시장의 다단계가 형성된 가장 큰 이유는 화물 공급량에 비해 차량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99년 14만대에 불과하던 화물운송차량은 2007년 33만대까지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화물량은 4억1만톤에서 5억5만톤으로 늘어나는 데 그쳐 증가 폭이 현저히 낮았다. 이런 상황에서 운송차량 공급과잉 현상이 초래됐고, 현장에서는 공정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지입제하에서 양산된 불법 다단계구조는 화물노동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 화물운송 물량은 확보하지 않고 단지 지입료만으로 먹고사는 지입전문회사가 화물운송업체 중 절반이 넘는다. 운송주선업체들은 4~5단계로 거치는 재위탁 과정에서 매회 4~10%의 금액을 알선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챙긴다. 이렇듯 다단계 거래를 통해 많게는 40%에 이르는 운임이 거래비용으로 중간에서 사라지게 된다.

결국 시장 왜곡에 따른 모든 피해는 화물운송시장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화물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또한 운송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입차주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이 상존하고, 이에 대한 분쟁조절 절차도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지입제 문제에 더해 지입차주들을 노동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법·제도의 폐단으로 인해 화물노동자들은 극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은 하루 19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운전과 수송제품 파손시 손해액보다 높은 금액 배상·페널티 명목의 50만원 일방공제, 불공정한 배차와 수송노선 지정, 상·하차 업무 강요, 운행 중 재해에 대한 책임 회피 같은 회사측 횡포에 맞서 지난해 9월부터 힘겨운 투쟁을 이어 오고 있다. 이들은 회사가 정한 노선에 따라 풀무원 제품만을 운송하고, 차량을 통일적으로 도색함은 물론 유니폼까지 지급받았으며, 회사의 실시간 위치 확인을 통한 관리체계하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오로지 지입차주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가 바뀌었지만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의 싸움은 험난하기만 하다. 2003년과 2008년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문제됐던 내용들이 아직도 계속되는 현실, 그 현실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지입제’라는 이름의 망령….

새해에는 이런 낡은것들이 싹 쓸려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지면을 빌려 30미터 높이 광고탑에서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외쳤던 연제복·유인종 두 노동자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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