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성 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대 입법’이라고 쓰지만 노동자들은 ‘노동개악 5대 입법’이라고 읽는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현장 노동자들이 새누리당 노동입법에 대한 입장을 글로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하루에 한 편씩 지면에 소개한다.<편집자>

최근 한 일간지는 ‘속보’라며 “대통령이 법안 걱정에 잠 못 이룬다”는 내용의 단신기사를 냈다. 요즘은 또 대통령 관심법이라는 말도 나온다. 언제부터 법이 대통령을 위해 다뤄졌던 것일까. 도대체 무슨 법안이기에 감히 대통령의 숙면을 방해한단 말일까. 그 관심법안의 핵심은 소위 노동개혁 법안이다. 그중 통상임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대통령은 한때 입버릇처럼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그러나 정작 비정상은 정부의 통상임금 해석이었다. 국어사전은 ‘통상’을 ‘특별하지 않고, 보통인 무엇’으로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임금이란 “보통의 노동자가 일정기간 일한 후 회사로부터 받기로 한 특별하지 않은 모든 금품(임금)”쯤 될 것이다. 법적으로 말하면 “사용자가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기로 정한 일체의 금품”으로 규정하면 될 일이다. 이는 대단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정의다. 그런데 왜 노동부는 이 상식적인 통상임금 해석을 거부하고 지난 26년 동안 비정상을 고집했던 걸일까.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해는 1953년이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법의 존재조차 모른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한 이듬해인 88년에 이르러 노동부는 비로소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정했고, 이후 몇 차례 개정했다. 당시 노동부 지침은 통상임금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했다. 노동자들은 그런 해석이 맞는 줄 알았다. 그 결과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지급돼야 할 임금 상당액이 사용자의 몫으로 돌아갔고, 순진한 노동자들은 20년 이상 임금을 떼어 바쳐 가며 재벌 사내유보금 1천조원 달성에 기여했다.

최근에서야 통상임금의 비밀이 벗겨졌다. 96년 2월 대법원은 “매월 지급되지 않더라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이라며 1년에 한 번 지급되는 체력단련비·월동보조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고 판결했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 3월 판결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대법원이 “정기적인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자 난리가 났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된다는 판결이 미치는 파장은 체력단련비 포함 판결과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노동부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과거의 비정상적인 통상임금 지침을 고수했다. 자본도 버텼다. 결국 통상임금 소송이 빗발쳤다. 그리고 기어이 정부와 자본은 역공을 폈다. 통상임금 논란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전원합의체는 큰 틀에서 기존 판결을 재확인했지만, 임금을 떼먹은 사용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그럼에도 정부와 자본은 더 확실한 대응이 필요했다. 아예 근기법을 뜯어고쳐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을 무력화하려 했다. 자본을 위한 정부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 5법이 그것이다. 그들의 근기법 개정안에는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금품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까놓고 말해 대통령이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말이다. 이제 "입사시 받기로 했던 소정근로의 대가"라는 통상임금에 대한 상식은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대통령에 의해 휴지통에 버려지게 생겼다. 다행히 내가 속한 발전노조는 2013년 6월 공공기관 최초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6월 승소했다. 반면 노조가 없거나, 아직 정상적인 통상임금 범위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일 판이다.

발전노조의 통상임금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법원은 “기본상여금 전체(300%)·성과급 일부(200%)·건강관리비·교통보조비·급식보조비·난방보조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차휴가근로수당을 재산정한 금액 190억원을 1천534명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1인당 평균 1천240만원가량 3년치 체불임금을 받게 된 것이다. 회사는 지연지급 이자부담을 줄이기 위해 판결금액 전액을 지급한 상태다. 또 해당 소송울 대표소송으로 인정해 소송 미참가자(회사간부와 기업별노조 조합원 포함) 7천여명에게도 동일한 산정방식에 따라 819억원가량을 추가 지급했다. 다른 공공기관 노조 대표소송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통상임금 관련 근기법 개악안이 통과된다면, 더 이상 통상임금을 바로잡을 길이 사라진다. 대한민국 노동자 누구도 예외없이 눈 뜨고 체불임금 떼일 판이다. 이 문제야말로 대통령이 불면으로 뒤척여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한겨울 긴긴밤 대통령은 누구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는 대통령이라면 통상임금 정상화로 부디 숙면을 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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