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대상판결/ 대법원 2015.11.27 선고 2015두48136 판결

1. 사건의 개요


노동자 A는 상시 1천여명을 고용해 용역업과 파견업을 하는 사업체 B에 2013년 12월30일 채용돼 대학병원에서 환경미화직으로 근무하다가 시용기간 만료일인 2014년 1월29일 해고됐다. A와 B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근로계약기간이 정해져 있다.

“근로계약 기간 : 2013년 12월30일~2014년 1월 29일(1개월). 단, 1개월 시용계약 기간 동안 근무평정 후 큰 하자 없을시 정규근로계약을 체결하기로 함”

B는 시용기간 만료를 앞둔 2014년 1월21일 A에 대한 평가를 했는데 5개 평가항목 모두 하위 등급으로 평가되자 A를 본채용 부적합 대상자로 결정하고, 같은해 1월28일 A에게 해고통보서를 교부했다. 해고통보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돼 있다.

“귀하를 채용기간(1개월) 만료에 의거 아래 사유로 2014년 1월29일부로 해고예고를 통보합니다. 사유 : 가. 근로기준법 제26조(해고의 예고), 나. 채용기간(1개월) 만료”

이에 A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됐고(2014.4.30 서울2014부해650 판정),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으나 역시 기각됐다(2014.8.5 중앙2014부해558 판정).

A는 중앙노동위 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행정법원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했고(2015.1.22 선고 2014구합17241 판결) 고등법원도 판결을 유지했으며(2015.6.18 선고 2015누35767 판결) 마침내 대법원도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2. 판결의 내용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B의 A에 대한 퇴직조치가 해고인지 아니면 근로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인지 여부고(전자라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 해고통보제도 적용, 후자라면 비적용), 둘째는 해고통보서에 해고사유가 기재됐는지 여부다.

1) 해고인가 계약해지인가

B는 1개월의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것이므로 해고가 아니라 기간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라고 주장했다. 해고통보서를 교부한 것 또한 문서의 제목과는 상관없이 본채용 거부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취지일 뿐이며 게다가 본사의 지시 없이 현장소장이 임의로 행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일관되게 해고라고 판단했다. 비록 근로계약서에 1개월의 계약기간이 기재돼 있으나 단서에서 시용계약임이 명시돼 있고, 아울러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도 3개월 이내 수습기간을 두고 평가결과에 따라 본채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 점 등이 고려돼 기간제계약이 아니라 시용계약임이 인정됐다.

2) 해고사유가 해고통보서에 기재됐는가

B는 설령 시용계약이 맞다 해도 시용계약의 취지상 해고통보서에 해고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즉, 기간만료에 따라 해고한다고 기재했으니 해고사유를 적시한 서면통지 의무를 준수했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그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해서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에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그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등 참조)”고 전제한 후 “근로기준법 규정의 내용과 취지, 시용기간 만료시 본 근로계약 체결 거부의 정당성 요건 등을 종합해 보면, 시용근로관계에서 사용자가 본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해당 근로자로 하여금 그 거부사유를 파악해 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실질적인 거부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단지 기간이 만료됐다는 내용만으로는 근로기준법에서 요구하는 해고통보서의 해고사유 기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3. 판결의 의의

정부의 노동개악이 마치 광풍과도 같은 시국이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해 5개 노동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기까지 했단다. 대체 이 나라가 어느 나락까지 떨어지려고 하는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삼권분립의 대원칙마저 시궁창에 처박히고 있는 실정이다. 5개 법안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내용이 가장 큰 문제다.

2년 범위 내에서는 마음대로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도 모자라 정부는 그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함께 기간제법을 정부와 언론은 어처구니없게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확산법이자 악법인 이유는, 단지 주기적인 해고(계약해지) 양산과 매 갱신 때마다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사용자의 손에 있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와 처우가 더욱 열악해진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정규직고용이라는 근로기준법상 고용원칙을 무너뜨리고 기간제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그 지위를 격상시켜 버렸다는 것이 악법인 핵심이유다.

이제는 기간제 비정규직이 워낙 일반화되고 당연한 것인 양 인식되다 보니 현장에서는 시용뿐만 아니라 수습까지도 마치 기간제 비정규직인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시용이나 수습기간이 끝나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노동자나 사용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게 다 고용의 원칙을 무너뜨린 비정규직 관련법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히 하자. 여전히 고용의 원칙은 정규직이어야 함을, 시용과 수습은 기간제가 아니라 명백히 정규직을 전제로 한 것임을. 따라서 시용이나 수습기간 중에 또는 그 기간 만료를 이유로 퇴직을 시키는 것은 계약해지가 아니라 해고다. 그러므로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기재한 서면통보를 하지 않으면 해고사유의 정당성 여부는 따질 것도 없이 부당해고다.

나아가, 신규채용은 모두 단기의 계약기간을 정해 형식상 기간제로 채용하고 평가를 통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규직 전환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역시 실질적인 기간제가 아니라 정규직을 전제로 한 시용이라고 판단하는 적극적인 법해석이 필요하다. 그것이 노동법의 입법취지에 맞는 올바른 해석이라 판단한다.

한편 2007년 해고통보제도 시행 후 시간이 지나면서 해고통보서에 기재돼야 할 해고사유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의 해석이 구체화되고 있다.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해야 하며 징계대상자가 위반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의 조문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판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 판결의 경우, 시용근로관계에 있어서도 단지 기간만료만이 아니라 본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구체적 사유가 해고사유로 기재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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