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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게재-시민은 억울하다 20] 주차장에 차가 없어요

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수천 가구에 이르는 아파트가 건설되고 소래에 버금가는 포구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믿고 큰돈을 들여 주차장을 지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 달리 포구를 찾는 사람들이 적다 보니 주차장은 늘 비어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차장 앞에 있던 공터가 ‘사실상’ 무료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다. 더구나 이를 단속해야 할 시는 포구 활성화를 위해서인지 몰라도 팔짱만 끼고 있다. 망했다.

1997년, 평생 농사만 짓던 4형제는 토지 수용으로 보상받은 돈을 주차장 짓는 데 ‘몰빵’(?)했다. 은행 대출도 더해졌다. 연면적이 1천500평에 이르는 5층 규모의 빌딩인데 주차 면수는 70면에 달했다. 나아지겠지 하고 버틴 지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대출 이자 갚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그나마 인근 실내 경정장 손님들이 차를 대는 바람에 근근이 먹고살았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주차장 건너편에 있던 놀이시설이 망하는 바람에 그 자리가 졸지에 대규모 공터로 변했고 주차장에 차를 대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바로 그 ‘공짜 주차장’으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돈 내고 주차하는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회한이 깊은지 팔순을 바라본다는 노옹은 얘기 중간중간 한숨을 쉬며 어렵게 말을 이어 갔다.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의 얼굴은 거의 흙빛이었다. “사실 주차요금 받아서는 관리 요원 한 명 월급도 줄 수 없습니다. 주차장법상 건물의 30퍼센트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데 거기서 나온 세로 이제껏 이자를 내 왔습니다. 그러고도 수지가 맞지 않아 저희 형제 넷이 순번을 정해 건물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월급으로 나가는 돈이 없으니 그나마 버텼지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망했을 겁니다.” “….” “투자를 잘못했으니 저희가 책임을 져야죠. 상권이 죽어 손님이 없는 거야 어떡하겠습니까. 그런데 저 공터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시 땅을 저 상태로 방치할 수 있습니까. 최소한 출입이라도 차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평일 오전의 주차장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건물에 세 들어 있는 상가 주인들 자동차로 보이는 몇 대를 제외하고는 아예 차란 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적막강산으로 변한 텅 빈 주차장을 몇 차례 돌고는 이내 건물을 빠져나왔다. 뭘 조사하고 묻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노옹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조용히 문제의 공터로 향했다. 시쳇말로 ‘헐’이었다. 그곳은 차들로 넘쳐났다. 일주일에 몇 차례만 열린다는 경정 시합이 오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박(?)에는 몇 십만원도 펑펑 쓰면서 주차료 몇 푼은 아까운 모양이었다. 놀이시설이 철거된 자리가 울퉁불퉁한데도 빈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다 ‘공짜’의 마력 아닌가 싶었다.

노옹을 절망시킨 또 하나의 장면을 목격했다. 주차장 앞과 옆 도로에 빼곡히 주차된 차들의 행렬을 보았다. 앞 도로는 아예 대놓고 시가 무료 노상주차장을 설치했고, 옆 도로는 불법주정차 단속이라 쓰인 현수막만 나부낄 뿐 ‘단속받지 않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니,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주차장에 차를 대겠는가 싶었다.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이니 어떻게 주차 단속을 하겠습니까.” 그저 물은 것뿐인데 동행한 관계 공무원은 설명과 핑계(?)에 여념이 없었다. 상인들의 이기심과 시민의식의 부재 그리고 시의 방조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뾰족한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단속을 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주차장으로 불하해 놓고 인근에 대규모 (사실상) 무료주차장을 운영하면 우리 보고 죽으란 말이냐”라는 말은 말이 돼 보였다. “주차난이 심각한데 놀이시설 부지를 개방해서 무료주차장으로 사용하라”라는 말도 말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말이 되는 말’ 대신 다수의 민원과 불만만을 고려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수가 행복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역 상권 회복을 위한 시의 고육지책(주차단속 중단, 무료주차장 개방)도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주차장을 허가(토지 불하까지)해 놓고 인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문제의식뿐 아니라 나름의 해결책도 갖고 있었는데 시에서 노옹의 주차장을 임차해(소득 보전) 이를 무료주차장으로 개방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위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예산’과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의회가 동의하겠느냐”에서부터 “다른 주차장은 어떻게 하느냐”까지 반대 논거는 차고도 넘쳤다.

이것 빼고 저것 빼고 나니 공터를 막는 길밖에 대안이 없었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있는 시민들의 반발까지 고민했다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 문제는 또 그 자체로 시가 풀면 될 일이었다. 돌고 도는 순환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담당 부서도 꺼림칙했는지 나의 주문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동 ○○번지 토지 중 현재 ‘사실상’ 주차장으로 개방되고 있는 부지에는 차량이 출입할 수 없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조치(출입통제 시설을 설치 등)하겠다”라는 의견을 전달해 왔다. ‘공짜’에 맛 들인 운전자들이 출입을 통제한다고 노옹의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단 몇 대라도’ 하는 바람은 숨기고 싶지 않았다. 다음은 나의 고민이 묻어 있는 의견 표명서다.

“‘시장은 노상주차장을 대신하는 노외주차장의 설치 등으로 인해 노상주차장이 필요 없게 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노상주차장을 폐지해야 하며, 노외주차장의 설치를 촉진하기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노외주차장의 설치에 관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고 한 법률(주차장법) 규정에서 보듯, 주차장 설치 및 관리에 있어 시장의 권한과 책임은 막중하다 할 것입니다. 또한 예상과 달리 ○○지구의 상권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근 상인들의 애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무료 노외주차장을 설치하고 불법주정차 단속을 소극적으로 전개한 행위는 시의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의의 목적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기왕 설치된 민간 노외주차장 영업에 부정적(비록 결과적이지만) 영향을 주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 상권 활성화와 시민의 정당한 영업권 보호라는 두 개의 목표가 양립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시흥시의 중요한 역할이며 책임입니다. 또한 놀이시설 철거 부지는 현재 매각 진행 중인 시 소유 토지로서 원칙적으로 출입이 통제돼야 합니다. 이는 시 소유 재산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하거니와 만약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불법 적치물 증가와 쓰레기 투기 등 슬럼화 가능성이 예상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익적 목적에 따른 다른 용도로의 전용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동 부지를 사실상의 무료주차장으로 개방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민원인 주차장 영업의 위축)가 생겼다면 부지 개방 정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더구나 동 부지의 주 사용자(주차)가 경륜 및 경정 사업소 이용자인 점을 감안할 때 부지 무료 개방 정책에 선의의(정당한 절차를 밟아 유료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는) 피해자를 방기할 만큼의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주차)에 편법으로 대응하기’보다 ‘출입 통제로 인해 예상되는 인근 지역의 불법주차 문제는 단속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시의 본연의 역할이라 할 것입니다. 다만 무료주차장 폐지와 불법주정차 단속 강화는 지역 상권 활성화라는 대의에 배치될 뿐 아니라 또 다른 집단 민원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며 민원인 역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여 놀이시설 철거부지의 출입 통제만을 요구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충민원의 유일한 해결책이랄 수 있는 ‘부지 출입 통제’를 주문합니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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