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리 공인노무사(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

2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된 다문화사회는 사회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초래했다. 외국인 범죄, 다문화가정 자녀의 저학력 문제에는 우리나라의 다문화 인식 부족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개발도상국 국민에 대한 배려 부족과 편견으로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어느새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어가 서툴고 다른 생김새 때문에 왕따나 놀림을 당하다 결국 공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사회적인 편견과 소외에도 다문화언어 가정은 증가하고 있다. 농어촌 비율이 낮은 경기도에서는 전체 학생 중 1%가 다문화가정 학생이다. 따라서 다문화언어 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를 해소하는 정책이다. 다문화언어 교육을 담당하는 다문화언어 강사는 2009년 이중언어 강사라는 이름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길게는 4년6개월에서 짧게는 1년6개월간 경기도교육청 소속으로 각 학교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은 사업예산 부족을 이유로 2015년 2월 다문화언어 강사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하고 주 15시간 미만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하라고 명했다. 다문화언어 강사들은 출퇴근 선전전을 시작으로 순탄치 않은 기나긴 해고투쟁에 돌입했다.

필자가 다문화언어 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흰 눈이 펑펑 오는 날 경기도교육청 노숙농성장이었다. 팰릿 2개와 침낭으로 만들어진 노숙농성장에서 그들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해고는 살인이다” “우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같은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

한겨울 맹추위에도, 설 연휴에도 다문화언어 강사들은 경기도교육청 앞 차가운 농성장에 있었다. 노숙농성은 단식농성으로 강도를 더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장과 다문화언어 강사 대표 2명의 단식은 일주일 넘게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단식 중이던 노동자는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노숙농성은 32일간이나 계속됐다. 출퇴근시간에 진행된 선전전까지 합치면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해고를 막기 위한 투쟁을 지속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다문화언어 교육사업은 한시적인 사업이므로 무기계약 전환은 불가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시간당 단가 인상안만 제시했다.

다문화언어 강사들은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싸움이 장기화하면서 점차 생계난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서 점차 동력을 잃어 갔다. 최초 50여명이 시작했던 싸움은 이후 20여명만이 남았다. 이탈한 30여명의 노동자는 주 15시간 미만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장기 투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투쟁 중이던 다문화언어 강사 한 명은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많은 노동자들이 생계곤란으로 다른 현장에서 근로를 제공하게 됐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 가정불화를 겪게 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끈질기게 버텼다.

그러나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커녕 한때 자신들의 성과로 보고했던 다문화언어 강사를 ‘비전문가’ 혹은 ‘불필요성’ 같은 말로 그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노동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중앙노동위 판정을 기다리던 중 공익위원들이 양측의 화해를 제안했고, 경기도교육청이 받아들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경기도교육청의 농락이었다. 정작 화해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는 기존 입장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화해안을 들고 와 ‘할 테면 해 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긴 싸움이 끝나리라고 기대했던 우리에게 그날의 울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화해는 결렬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중앙노동위는 경기지노위 판정을 취소하고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정확히 1년 만에 얻은 값진 승리였다.

사실 이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 필자는 다문화언어 강사라는 직종이 학교에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결혼이주여성이나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 사회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강했고 자신들의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며, 학교를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반성하게 됐고, 다문화언어 강사가 반드시 이 사회에 필요한 인력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던 지난 18일 경기도교육청은 중앙노동위 판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고, 이행강제금 지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예산부족을 이유로 다문화언어 강사사업을 축소했다는 교육청의 설명이 거짓말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경기도교육청 수장은 누리과정 예산 확보를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다문화언어 강사들의 요구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뿐이다. 부디 하루빨리 다문화언어 강사들의 요구가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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