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달 기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퇴직금마저 떼일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흑성(63·사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지역지부 민들레분회 주차현장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이흑성 대표는 해고자 신분이다. 경북대병원에서 주차장 관리를 하는 노동자들은 병원측이 올해 9월 용역업체를 바꾸면서 해고됐다. 경북대병원은 같은달 23일 ㈜리더스디벨럽먼트라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35명 중 31명만 신규채용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선별채용 계획에 노동자들은 경악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도록 한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이행하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이뤄진 신규채용에 응한 9명을 제외하고 26명이 모두 해고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존 용역업체 사장은 병원이 지급한 퇴직금까지 들고 야반도주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사장은 구속됐지만 퇴직금은 아직 지급되지 않고 있다.

경북대병원에 항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달 10일 대구지법이 의료연대본부 대구지부와 이정현 대구지부장·이흑성 대표 등을 상대로 경북대병원이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집회는 하되 확성기를 쓰지 말고, 유인물이나 현수막을 걸지 말라는 내용이다. 노조는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뒤에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28일 오전 대구 중구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전원 고용승계돼 복직하는 것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26명이 무더기 해고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용역비를 절감하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북대병원 용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보호지침에 따라 기본급을 시중노임단가로 지급하니 용역비가 올랐다. 노조를 만들고 나서 2년 사이 주차관리만 해도 용역비가 연간 2억원 넘게 증가했다. 여기에 경북대병원이 경북 칠곡군에 제2 병원을 짓고 임상실습동을 세우며 몸집을 불리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병원 빚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병원측이 지난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비용절감에 나선 이유다. 그런데 가장 손쉽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뭔가. 바로 용역노동자를 줄이는 것이다. 주차 도급인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권리를 찾아 나가는 것도 이유가 됐다고 본다. 용역업체 입장에서 이윤이 줄어드니까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했을 것이다. 용역비를 절감하려는 원청 경북대병원과 이윤 창출 걸림돌을 없애려는 하청 용역업체가 노동조합을 없애는 것에 손발을 맞춘 셈이다.

원청인 경북대병원은 도급인원을 4명 줄이고 새로 선정된 용역업체가 고용승계가 아닌 신규채용으로 선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용역업체는 사업 개시일인 10월1일 보안원을 동원해 일하겠다고 출근한 26명을 쫓아냈다. 정부는 고용을 승계하라고 했는데, 국립대병원은 해고를 했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병원이 오히려 용역업체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 경북대병원이 비용을 절감하면서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얘기인가.

"너무 기가 막힌다. 병원 구성원이라 생각하고 길게는 12년까지 일한 사람도 있다. 그동안 병원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줬나. 시중노임단가를 준 기간도 겨우 1년 정도밖에 안 된다. 교육을 할 때는 ‘한 가족’이라고 했다. ‘병원고객 첫 대면을 맡고 있는 여러분의 몫이 크다’고도 했다. 그랬으면서 아무런 예고나 협의도 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고하고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 경북대병원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고돼야 할 이유는 없다. 경북대병원은 공공기관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디 공공병원이라고 할 수 있겠나. 공공기관인 경북대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퇴직금까지 떼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전원 고용승계돼 복직하는 것이다. 그 기간이 당겨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연대를 바란다."

- 앞으로 투쟁계획은.

"현재 대구시청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병원장실 앞에서는 침묵시위 중이다. 매일 촛불문화제도 한다. 병원이 각종 고소·고발을 한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투쟁할 생각이다. 대구지역 공공기관에서는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호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비정규직 해고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보호지침이 지켜지도록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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