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전북 익산에서 통일 토크콘서트 도중 사제 폭발물이 투척돼 2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일베’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극우 청소년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테러 가해자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수사를 당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토크콘서트를 ‘종북’ 토크콘서트로 지칭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과 수구언론이 움직였다. 토크콘서트를 함께 진행했던 재미교포 신은미씨는 강제출국을 당했고, 황선씨는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황선의 집에서 기껏 옛날에 쓰던 공책을 들고나오는 쇼를 연출했지만, 법원은 우스꽝스럽게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종편에서는 떠들썩하게 황선이 1998년에 대학생 신분으로 평양에 갔다 온 ‘종북주의자’이며, 2005년에는 평양에서 딸을 ‘원정출산’한 ‘종북마녀’라고 여론몰이를 해 댔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내란선동사건 유죄판결에 이은 종북몰이의 연쇄였다.

1.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을 찍은 가족 다큐멘터리

<불안한 외출>은 황선과 윤기진 부부를 찍은 가족 다큐멘터리다. 김철민 감독이 2011년부터 이들 부부를 촬영해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첫 상영이 됐다. 그때만 해도, 10년 수배생활과 5년 수감생활을 마치고 아내와 두 딸이 있는 집에 온 윤기진의 모습을 주로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이후 황선에게 언론의 주목이 쏟아지면서 영화 후반부가 황선을 중심으로 재편집됐다. 2014년 가을부터 불어닥친 정부의 마녀사냥 덕분에, 황선은 영화 조연에서 투톱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영화는 2011년 윤기진의 출소 장면으로 시작된다. 3년 만에 출소하는 윤기진을 반기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이윽고 구치소 문이 열리고 환하게 웃으며 나오는 윤기진. 어쩌면 이러한 오프닝에서, 통일운동가 부부의 영웅적인 삶을 그리는 뻔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우려를 품은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장면 만에 영화는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영화는 윤기진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닌 솔직한 개인으로 그린다.

구치소 문을 나온 윤기진은 “오늘 못 나오게 될까 봐 진짜 두려웠다”고 토로한다. 출소 하루를 앞두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옥중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옥중 편지는 모두 교정당국 검열을 거쳐 밖으로 내보낸다. 그런데 검찰은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를 적용해 윤기진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행히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기소는 이어졌다. 영화는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황당하게 특정한 개인들을 가혹하게 옥죄는지 드러낸다. 아울러 이러한 탄압에도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황선은 건배를 하며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랑 결혼했는지 진짜로 알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윤기진의 수배생활 중에 첩보작전 같던 결혼식과 두 딸의 임신과 출산을 겪은 황선은 윤기진과 한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 눈을 피해 잠깐 만나거나, 어린 딸들과 함께 면회를 한 것이 전부다.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아빠를 딸들은 낯설어한다. 어린 딸은 “착한 일을 한 아빠가 감옥에 갔다”는 말의 모순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2. 모두가 떠난 그 길에 남은 자

무려 15년의 수배생활과 수감생활을 겪은 윤기진은 대체 어떤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까. 명지대 94학번이던 윤기진은 강경대 열사와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을 접하고 자신이 알던 세계관에 균열을 느낀다. 95년 전두환 노태우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시위대에 그가 있었고, 96년 통일대축전이 열린 연세대에 그가 있었다. 당시 경찰은 연세대를 봉쇄하고, 음식과 전기와 물을 차단했다. 다큐멘터리는 부모님들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려는 초코파이가 전경들에게 짓밟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9일 동안 빈사 상태에 놓여 있던 학생들에게 진압대가 들이닥쳤고, 3천명의 학생들이 얻어맞으며 끌려 나왔다. 그중 한 명이 윤기진이었다.

끝까지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던 윤기진에게 판사는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98년 2월에 출소한 윤기진은 정권의 탄압으로 초토화된 학생운동을 보고 "나마저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윤기진은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섰고, 한총련 의장이 됐다. 97년에 이미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됐기에, 한총련 의장이 된다는 건 곧 수배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이로부터 그의 10년간의 수배생활이 시작됐다. 사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없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 어떤 사소한 일을 하지 못해서 그리 된 것이다. 즉 반성하거나 외면하거나 굴복하거나 변절하거나 타협하거나 양심을 속이거나 자기를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남들이 다 떠난 그 자리에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그가 홀로 남아 그리 됐다.

3. 국가보안법은 왜 여전히 살아 있는가

그는 왜 10년이나 수배생활을 이어 갔을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아 자수를 택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수배가 풀릴 거란 기대가 있었을 터다. 실제로 2000년에 6·15 공동선언이 나오고,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이제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때라고 말했다. 이후 남북관계가 호전돼 2005년에는 민간인의 평양여행이 가능했다. 그 결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평양관광에 오른 황선이 예정일보다 먼저 둘째를 낳는 사건이 발생했다(종편에서는 이를 ‘원정출산’이라 부르며, 마치 평양에서 출산하기 위해 잠입·탈출한 것처럼 말한다). 그런 호시절도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은 끝내 폐지되지 않았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들을 비롯한 여러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영화를 본 느낌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경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일단 우리가 늘 숨 쉬고 살아온 동일한 시공간에서 첩보영화를 찍듯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줄 알고 있었던 21세기에 저런 탄압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감상이 남다를 것이다. 나는 88학번이고, 인민민주주의(PD) 계열에 속한 운동의 경험을 갖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들 부부에게 세대적으로나 정파적으로나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내가 학교를 떠났을 때, 내가 정파적으로 외면했을 때,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지 영화가 찬찬히 일깨워 줬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민주화를 이룬 세대라고 자부하는 이들이여, 이 영화를 보라. 그리고 <변호인>을 보고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오래된 정원>을 보고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인 양 자조적 감상에 젖거나, 정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마녀사냥 당하는 이들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을 보라. 이들의 고난에 시대를 빚지고 있지 않은가.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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