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다행히’ 올해에도 뜻깊은 축구대회가 열린다. ‘다행히’라고 언급한 것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졸전 이후 축구 인생의 큰 시련을 겪은 홍명보 전 감독이 중국 항저우 뤼청 사령탑으로 부임함과 동시에 13년째 이끌어 온 연말 자선축구대회를 27일에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근 은퇴 발표를 한 이천수 선수를 비롯해 김병지·박주영 같은 고참에서 구자철·지동원·이근호는 물론 FC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신예 이승우까지 참여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일이다. 이 대회로 인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큰 도움을 얻고 ‘희망’이라는 글자의 힘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축구 스타들의 선행, 함께하는 기업과 미디어 그리고 팬들의 순정한 마음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아픔과 상처는 ‘개인적 불운’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했거나 적어도 그런 구조와 맥락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자선과 온정은 소중한 일이지만, 이 사회의 소외와 냉대가 ‘선행’으로 인해 가려져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선행에 더해 이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구조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분노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홍명보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에게 거칠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충분히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해 왔다. 다만 해외의 경우 적지 않은 스포츠 스타들이 ‘자선’과 ‘선행’에 멈추지 않고 더 일보전진해 사회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 왔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의 축구스타 호나우지뉴를 생각해 보자. 원래 이름은 호나우두. 그러나 폭풍 질주로 유명한 90년대 선배 스타와 이름이 같아서 ‘꼬마 호나우두’라는 뜻으로 호나우지뉴라고 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전에서 우아한 포물선의 골을 터트리며 양 팔을 팔락거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모습, 동시에 그 경기에서 석연치 않게 퇴장을 당하는 그 순간에서도 특유의 천진한 웃음을 선사했던 바로 그 호나우지뉴다.

2006년 12월 호나우지뉴는 “내 생애 최고의 골”이라는 말을 하면서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그 골은 정규 경기에서 터트린 게 아니었다. 특별 이벤트의 골이었다. 고향 포르투 알레그레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호나우지뉴 학교’를 열었고 그 역사적인 개교를 알리는 시축을 하면서 터트린 눈물이다.

호나우지뉴는 브라질 남단의 항구도시 포르투 알레그레의 빈민가 샨티타운에서 태어났다. ‘파벨라’라는 판자촌이 그의 성장 무대였다. 아버지는 용접공이었으나 늘 빠듯한 살림살이라서 일자리를 하나 더 구해야만 했다. 당시 이 도시는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자를 위해 최대한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아버지는 프로축구팀 그레미우의 경기장 경비로도 일했다. 어린 호나우지뉴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축구장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공을 차게 됐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호나우지뉴가 8살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호나우지뉴는 가난했지만 늠름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또한 그와 함께 자란 빈민가 친구들도 잊지 않았다. 스타가 된 뒤에도 늘 고향을 찾았으며 가난한 동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일을 찾아서 헌신했다. 단순한 기부 이상의 실질적인 헌신, 병원이나 학교 같은 것을 후원하거나 설립했다. 그 규모가 상당하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추진됐으며 무엇보다 호나우지뉴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교육·복지·문화 등의 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돈벌이를 하고 ‘자선’이라는 명목으로 재산을 불리는 우리 사회의 일부 그릇된 행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고향, 즉 포르투 알레그레는 여느 평범한 도시가 아니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도시’, 바로 포르투 알레그레의 시정 목표다. 경기가 나빠져도 빈민·장애인·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나 예산을 삭감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1989년 도입된 주민참여예산제가 아름답게 실현되는 도시다. 예산 확정에 참여하는 주민은, 많이 배우고 영향력 있는 ‘유지’ 중심이 아니라 연령·성별·소득·학력 등을 골고루 안배해 구성한다. 심지어 노숙인 대표자도 있다.

이러한 포르투 알레그레는 그러나 고난과 갈등 속에서 탄생했다. 80년대 초부터 빈민들이 대거 이주해 도시 외곽에 빈민가가 대거 형성되고 이에 따라 극심한 빈부격차와 치안 부재에 가까운 불안이 가속화된다. 이 처참한 상황에 대해 독재 정권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88년 독재 정권이 붕괴된 이후 포르투 알레그레에도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진보정당인 노동자당(PT)이 도시를 책임지면서 인권·주거·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여성·빈민·노숙인까지 주체로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 위생·교육·치안·복지 등의 숱한 난제들이 하나씩 개선됐다. 도시 외곽의 허름한 빈민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그 혜택을 받았다. 단순히 지원비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재활과 자활이 가능한 사회활동으로 연계되면서 자학과 절망에 빠져 있던 빈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까지 갖게 됐다. 호나우지뉴의 아버지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호나우지뉴는 단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선을 베푼 게 아니라 가족들이 자활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포르투 알레그레에 보답을 한 것이며, 이 도시를 건강하게 재생시킨 노동자와 주민들의 연대의식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이 있다. 이른바 ‘세계 정·재계 지도자’들이 모인다고 한다. 반면 ‘세계시민사회포럼’도 있다. 강자들의 세계화에 맞서 약자들도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나누고 보살피는 세계화를 모색하는 자리다. 어디서? 다름 아닌 포르투 알레그레다. 서로 연대하고 나누고 보살피면서 "함께 살자"고 하는, 그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의 실천을 선도한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 말이다. 호나우지뉴는, 가족과 자신을 키워 준 이 도시의 인권과 자유와 연대의 정신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스포츠 스타들이 자선을 베풀고 선행을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가난과 노동에 대해 재인식을 하는 것이다. 연대와 저항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인식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 위에 위엄 있는 스포츠 스타들의 아름다운 선행이 함께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풍경이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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