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관심을 두고 싶지 않지만 노동법이 걸려 있는 터라 자연히 국회 관련 뉴스에 관심이 쏠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 분열로 이어지는 까닭에 입법부가 제대로 법을 만들기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그리고 일관되게 언급되는 내용이 있다. 바로 “공직선거법과 이른바 경제활성화 관련법 그리고 노동 5법이 일괄 패키지로 통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설마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노동관계법이 다른 법률과 맞바꿔지는 지경으로 내몰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찌 노동법이 흥정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법률 중 소중하지 않는 법률이란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모든 법률은 그 자체로 완결성과 정합성을 가져야 한다. 다만 해당 법률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고려해 그 가치를 비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법률이 일률적으로 같은 수준의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절차를 정하거나 행정법상 단속규정들은 기본권 주체의 권리의무를 정하는 법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을 크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헌법에서 위임한 노동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에 관한 법률은 그 자체가 헌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동 5법은 노동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고용보험법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임금과 근로시간, 산업재해와 고용보험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는 비정규직 노동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법률이다.

정부에서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경제활성화법’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들에게 직접 적용될 노동관계법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노동자 아닌 시민이 있다던가. 그러므로 노동관계법은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법률을 적용받게 될 당사자들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23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정부·여당이 한국노총과 합의도 되지 않은 내용을 입법발의한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사정 합의 사항을 위배할 경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은 22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입장은 더 확고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발표에 의하면 노동자 97%가 사용기간 연장에 반대하고 93%가 파견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사자 동의를 얻지 않고, 더군다나 반대하는 법률을 강행할 명분이 그 어디에 있겠는가. 국회는 바로 일하는 자들의 대표자가 아니던가.

일이 여기까지 온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게 맞는지, 그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인지, 정부 의견대로 법이 통과되면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비전문가이지만 첫 번째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은 “아니다”이다. 객관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 높은 신뢰를 보이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내놓는 대한민국의 신용도나 경제성적은 외견상으로 우등생임에 분명하다. 최근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2'로 상향하고 역대 최고라고 발표했다. 세계 '톱7'이다. 일본보다도 좋다. 세계 7등은 아마 앞으로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성적일 수 있다.

결국 오늘의 어려움은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어려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기업에 비해 노동자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부가 책임을 전가하려는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미미하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으로 확인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처한 오늘의 어려움은 1차적으로 분배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 정의로운 분배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이 같은 목적 달성에 반하는 법률은 폐기돼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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