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PIP교육은 ‘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의 약자로 ‘저성과자 역량 향상교육’이라고 부른다. PIP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이다. 특히 과장급 이상 장기근속자에 대해 역량 향상교육으로 진행된다. 교육 과정에서 많은 수의 노동자가 퇴사하거나 교육 이후 오히려 현장에 적응하지 못해 해고되는 등의 폐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르노삼성자동차에서 2013년 PIP교육을 받은 5명의 노동자 중 2명은 교육시작 1개월 후 퇴사했다. 나머지 3명은 모두 징계대상이 됐다. 회사가 든 징계사유는 “2013년 6월17일부터 8월9일까지 진행된 역량 향상프로그램 운영기준에 따라 2주간 1회씩 총 4회에 걸쳐 교육을 진행했으나, 역량 향상프로그램 과정에 참여함에 있어 강의시간을 미준수하고 테스트 및 과제 수행에 불성실해 4회에 걸친 교육을 수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점심 도시락까지 싸 가지고 다니면서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 가면서 교육에 임했다는 노동자들의 항변과는 극명하게 배치되는 징계사유다.

교육 분량은 방대하고 평가방식은 매우 복잡하다. 온라인 수강으로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은 8주간에 걸쳐 16개 과정으로 구성돼 있고, 각 과정은 16개 내지 27개의 차시(챕터)로 구성돼 있다. 원래 1개 과정당 4주에 걸쳐 실시하고 하루에 3차시 내지 4차시 이상 듣지 않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을 ‘1주당 2개 과정’으로 압축해 진행했다.

각 과정별로 평가가 시행됐는데 8주 동안 16개 과정별로 총 32회의 평가가 진행됐다. 과정의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테스트 및 과제 응시자격이 없고 응시하지 못하면 미수료로 처리된다.

온라인 수강은 회사에서 정한 근무시간에만 들을 수 있다. 퇴근시간 후 회사에 남아서 보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집에서도 들을 수 없다. 교육 대상자들은 회사가 정한 시간 내에 방대한 교육 분량을 수강하기 위해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면서 온라인 수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 강의를 모두 들었다고 해서 수료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강의당 ‘최소학습시간’을 설정해 강의를 들은 시간이 최소학습시간과 10분 이상 차이가 나면 미수료가 됐다. 최소학습시간은 교육프로그램의 구동시간보다 더 높게 책정됐다. 다시 말해 해당 교육프로그램을 그대로 구동하는 경우 30분이 소요되는데, 최소학습시간이 50분으로 설정돼 있으면 30분간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더라도 교육을 안 들은 것으로 처리됐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교육이 끝날 때까지 교육 대상자들에게 최소학습시간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 대상자들은 온라인 구동시간 이상으로 수강을 해도 최소학습시간에 미치지 못해 미수료로 처리될 수 있는데, 정작 자신의 교육시간이 최소학습시간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하나의 강의를 오래 듣고 있을 수도 없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빡빡하게 정해진 교육내용을 모두 이수해야만 매주 수요일 오전과 금요일에 진행되는 테스트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경기로 치면 터치라인 반칙규정이 있는데 라인을 안 보이게 해놓고 반칙했다고 경고를 하거나, 육상경기에서 선수의 눈을 가리고 자기 라인을 벗어나지 말고 곡선구간까지 돌아 정해진 시간 안에 들어오라는 식이다.

징계를 받은 지 2년 이상이 경과한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2015나2022593)은 △최소강의시간은 강의제작자가 해당 강의과정을 수강자가 충실히 따를 경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을 정해 둔 것인데 그 정확성을 확인할 객관적인 방법을 알 수 없는 점 △동영상 강의에 나오는 지시에 따라 강의시청을 중단하고 문제를 풀거나 계산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경우 수강생의 능력에 따라 그 시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정해진 최소강의시간에 미달하는 시간에 충실한 강의수당이 가능할 수도 있어 보이는 점 △강의수강시간에 있어서의 몇 초 차이로 2주간 교육에 대해 미수료 여부 및 경고장 발부 여부가 결정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대단히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최소학습시간을 이유로 한 미수료 처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판결이 나왔을 때는 이미 교육을 받은 5명의 노동자 중 2명은 퇴사, 1명은 법정다툼을 포기하고, 소를 제기한 2명 중 1명의 노동자도 퇴사를 하고 소를 취하한 이후였다. 이제 1명만이 남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제도에 대해 분쟁예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공정한 평가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평가기준과 절차, 평가방법의 공정성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법원도 ‘리더십이 있느냐, 부서원과의 소통, 책임감, 성실성’ 등 평가자가 얼마든지 자의적인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주관적 기준을 용인하는 마당에 노동자가 평가 과정의 공정성을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교육이나 배치전환 등 교정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앞서 PIP교육 사례에서 보다시피 해고를 위한 장식이나 시간유예에 불과하고 교정기회로서의 의미는 없다.

물론 저성과자 해고의 부당성이 입증돼 노동자의 억울함이 풀리는 경우도 간혹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많은 시간과 비용 때문에 법적다툼을 포기할 것이다. 수년이 흐른 후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문을 받아들었다고 해도 정작 돌아갈 회사가 없어졌거나 달라진 업무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퇴출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공정하게 작동되리라고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다. 법적·사후적 구제절차는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돈과 시간은 언제나 자본의 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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