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강전 대학노조 연세대지부 조합원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대 입법’이라고 쓰지만 노동자들은 ‘노동개악 5대 입법’이라고 읽는다. 비정규직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며,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새누리당 노동입법에 대한 입장을 글로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하루에 한 편씩 지면에 소개한다.<편집자>

대학생활의 리듬은 학기가 기준이다. 회계 같은 업무도 마찬가지다. 교직원에게 12월은 학기 마무리로 바쁜 시기고, 새해를 준비하는 업무가 예정된 달이다. 그리고 12월은 무엇보다 별리의 순간이다. 3월 계약만료가 예고된 계약직 교직원들은 낯빛이 어둡다. 봄이 먼 12월임에도 벌써부터 화사한 대학 청춘들에 비하면 더욱 어둡다.

이제 1년을 보낸 계약직은 재계약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2년을 꽉 채운 이는 어디서 무엇으로 새로 시작해야 할지 걱정이다. 나 같은 무기계약직은 그 타는 속을 짐작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젊음이 가득한 12월의 캠퍼스지만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창백하다.

친한 동생이 계약만료를 앞두고 있다. 불안한 심정을 넘기듯 그와 소주를 마셨다. 한참이나 설움을 삼키더니 물기 젖은 목소리로 이직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그는 벌써 삼십 대다. 어렵사리 직장을 구하더라도 같은 불안이 반복될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숙명이다.

게다가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더 이상은 도저히 신입사원일 수 없는 나이가 될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나로선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하다. 무기계약직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지푸라기처럼 잡고 일하는 사람에게 해고통보와 다름없는 노조가입을 권유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지난 수년간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은 기적(정규직화)을 함께 기원해 줄 수도 없다. 정규직의 사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도 견뎠지만, 차별을 하다하다 건강검진 회수에 도서관 대출권수까지 다르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하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다가 다시 차분해진 얼굴로 “어쩌겠냐”며 일이나 하러 가겠다던 몸짓만큼 씁쓸한 체념이 있을까 싶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와 무심코 튼 텔레비전에서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바보를 흉내 내는 일이다. 1% 미만 확률임을 알면서도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속인다. 명백한 차별을 당하고도 웃어넘긴다. 월세와 공과금에 휴대전화 요금까지 내고 나면, 하루에 1만원만 써도 통장은 차오를 기미가 없는데도 바보처럼 밝은 미래를 꿈꾼다.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더라도 재계약 앞에서 비굴해지고, 안부를 묻는 어머니에겐 내가 그래도 대학 교직원이라고 둘러대는 것.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그 바보 흉내를 매년 되풀이하는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2년 계약기간이 짧다는 점이 아니다. 정해진 기간이 끝나고 난 이후의 선택권이 오로지 사용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문제가 비정규직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비정규직 기간제한이 2년이 아니라 4년이 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다. 계약기간이 끝난 후 아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니 기간연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더 악독한 변화라고 답하겠다. 대학에는 기간연장의 실제 사례가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적용 예외대상인 연구원과 조교들이다. 사용기간 제한 없이 매년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대학 연구원과 조교의 삶은 다른 계약직보다 더더욱 팍팍하다. 매년 재계약을 위해 이들이 벌이는 악전고투는 처참하다. 대학의 사소한 정책 변화나 윗사람과의 사이, 근무평가와 출퇴근시간 등 주변의 모든 것이 그 싸움의 장이다. 어렵게 다시 쟁취한 1년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바친 것은 삶 그 자체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한다고 한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기간제의 최저시급을 정규직 시급이나 평균시급보다 높게 책정해 삶의 불안정성을 보완해 준다고 한다.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억울한 바보들의 꿈이 조금이라도 실현되기를 기대하지만, 실은 허망하다. 새 학기 전에 정부·여당이 기간제법을 바꿀 분위기다. 그럼에도 대학 비정규직도 학생들처럼 새 학기의 활기를 느껴 볼 날을 상상한다. 이미 죽은 삶을 두 번 죽이는 노동개악 입법으로 새해를 맞고 싶지 않다. 위정자가 제일로 삼는 가치는 수치경제의 효율성이 아니라 삶의 행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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