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돌아보면 해마다 12월은 노동계에 잔인한 달이었다. 노동관계법을 뜯어고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를 위하기보다는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아픔을 주는 법률이 대부분이었다. 재작년 2013년에는 민주노총이 침탈당했고, 비교가 쉽지는 않지만 기존 입장에서 크게 후퇴하는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가 있었다. 모두가 노동기본권 내지 근로기본권을 크게 침해하는 사건들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먼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주 구속됐다. 총연맹 위원장으로서 세 번째라고 한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부와 여당 대표가 나서 노동기본권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상황에서 구속됐기 때문이다.

과연 한 위원장이 구속될 만한 행위를 한 것일까. 한 위원장에게 적용된 죄목이 지난 4·24 총파업, 5·1 노동절대회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변호사 활동을 하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스스로 조계사를 나와 수사를 받겠다고 나선 마당에 구속수사를 할 필요성은 사라졌다고 보인다. 경중을 따져 봐야 하겠지만 설사 중대한 범죄혐의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에서 정한 원칙은 불구속수사다.

그런데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한 위원장에 대한 인상은 반란에 준하는 국가 전복세력의 대표자로 각인돼 있다. 아마도 11·14 민중총궐기대회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차 확인하지만 한 위원장에게 적용된 구속사유와 민중총궐기대회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현명한 재판부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게다. 그럼에도 구속영장청구를 인용한 것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지만 아마도 사법부가 여론재판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이 같은 여론 형성에는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다. 영장과는 전혀 무관한 보도를 쏟아 내지 않았나. 24시간 내보내는 보도 배경화면에는 늘 폭력집회 관련 영상을 깔았다. 특히 종편 등에서는 조계사에 들어간 날부터 시분을 다퉈 한 위원장의 ‘구속’ 명분을 만들어 냈다. ‘소요죄’까지. “검찰이 검토하고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를 만들어 냈다.

노동자에 대한 이와 같은 법집행은 상식에 크게 벗어난다. 우리 정부가 그토록 따르고 싶어 하는 국제기준에 한참 뒤떨어진다. 마침 16일 국제노총 아시아태평양지역기구(ITUC-AP) 스즈키 사무총장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연달아 방문했다. 오전에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접견하려 했으나 경찰은 “통모 및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스즈키 사무총장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석방하고, 노동개악을 즉각 중단하라”며 국제노총 이름의 성명을 발표했다.

스즈키 사무총장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노동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왔다”며 “한상균 위원장은 현재 아태지역에서 유일하게 구금돼 있는 노조 위원장”이라고 한국 정부를 성토했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떤 제도든지 현실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규범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노동관계는 더욱더 그러하다. 수시로 바뀌는 노사관계와 근로계약관계를 위해서는 그만큼 시의성이 크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12월에 노동입법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돌아보면 12월에 만들어진 노동관련 법들은 이미 만들어졌어야 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폐기됐어야 할 가능성이 컸던 것들이다.

현재 새누리당이 제기한 5대 법률도 같다. 통상임금을 정한 근로기준법과 출퇴근재해를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범은 벌써 만들어졌어야 했다. 관련 규정 미비로 빚어진 노동현장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이미 폐기됐어야 했다.

12월 노동현장의 요구는 총연맹 위원장 구속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법률과 법집행이다. 그래야 노동관계 법률과 제도가 규범력을 회복할 수 있다. 2015년, 아직도 우리에게는 보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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