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408일. 고공농성을 벌였던 차광호씨가 땅으로 내려오는 데 걸린 기간이다. 아직도 부산에서는 생탁·택시노동자가, 서울에서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100일을 훌쩍 넘겨 하늘에서 농성 중이다. 통계상 분규 사업장과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든다는데 장기투쟁 사업장은 그대로다. <매일노동뉴스>가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장기투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사정의 인식과 태도에 따라 동일한 조건의 분쟁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도 있으며, 장기분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주체별 주요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노동조합은 현실을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의 노조회피 전략은 계속될 것이며, 파업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동일 사업장 내 제2·제3의 노조가 생겨날 것이며, 일부 조직은 사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운영될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본격적 은퇴 시기가 도래하면 노조는 더욱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노조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대처해야 한다.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 결정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장기투쟁은 너무나 험난한 여정이다. 몇몇 노조 지도부는 파업의 예측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투자해 온 자원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혹은 파업 돌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오래 싸워 나가는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를 겪는다. 결국 장기분규의 폐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전가된다. 노조 지도부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고, 투쟁 돌입에 있어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파업권은 위협의 수단으로 존재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속성을 가진다.

아울러 노동조합의 역량 제고가 요구된다. 적대적인 사측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조 내부의 결속력이 중요하다. 장기분규 사업장 노조는 상급단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어렵다면 시민단체 등 외부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의제를 사회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 상급단체는 각 조직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각 조직에 맞는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분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름 아닌 사용자다. 사용자는 고용관계 본질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전향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사유물이 아니며,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내 성공기업들의 사용자들은 대체로 회사의 성장이 건전한 노사관계와 행보를 같이한다는 신념하에 노사화합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사용자는 조직 내 정보비대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사 간 정보의 비대칭과 커뮤니케이션 부족은 분규 기간을 늘리는 대표적 요인이다. 장기분규 사업장 가운데에는 실제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한 곳들도 꽤 있다. 이러한 기업의 사용자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어려움을 적극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노사 간 신뢰수준과 교섭효율성 제고를 위해 사용자는 합리적 리더십과 인적자원관리 역량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용자는 경영자의 비윤리성과 무책임성, 반노조전략이 장기분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장기분규 사업장의 사용자들은 하루빨리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책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반노조전략의 강도가 거세고 폭력적일수록 결국 더 큰 저항을 야기하고 파업기간도 장기화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장기분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뿐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극단적 장기분규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정부가 집권할 경우, 파업 지속기간이 길어진 바 있다. 최근 자본과 권력의 유착에 따른 폐해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쪽에 편향되지 않는 공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장기분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관련 법·제도의 정비, 조정 역량의 제고 등이 있다.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분쟁이슈로 다투는 노사의 투쟁 대부분은 장기화된다. 법·제도의 모호성이 파업 기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현재 법·제도 정비가 필요한 다양한 노동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특수고용·간접고용 등 새로운 고용형태에 대한 제도의 정비, 원·하청 간 동반성장,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법적 개선이 시급하다.

아울러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노동위원회의 상임위원 중심체제 구축, 사전조정과 사후조정 활성화, 기업 차원의 노동분쟁 해결시스템 연계체제 구축 등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및 인프라 개선이 요구된다. 더불어 노동위는 접수된 분쟁 가운데 장기분규 위험 사건을 선별하고, 조정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현행 조정신청 부의안과는 별도로 사전에 장기분규 위험 사건을 판별할 수 있는 사건별 체크리스트를 작성할 것을 제안한다. 체크리스트에는 분쟁의 성격과 노사의 구체적 특성이 포함돼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분쟁 사건의 본질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점진적으로 시스템의 효과성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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