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승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61641 부당배치전환 구제 재심판정취소, 2015구합5344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취소

1, 사건의 경위
증권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H회사는 방문판매를 위한 ODS(Out Door Service) 조직을 신설하고 2014년 8월29일 20명의 노동자들을 2014년 9월1일자로 ODS 부서로 배치하는 인사발령을 했다. 이 사건 배치발령으로 인해 ODS부서로 전환된 20명의 노동자 중 17명은 H회사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고, 조합원에는 지부장·부지부장·사무국장·회계감사 등 이 사건 노동조합의 핵심 간부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H회사는 이 사건 배치전환 직전인 2014년 7월25일 일방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해 노동자 252명이 퇴사했고, 기존의 고정 상여금을 노동자의 개별성과에 연동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복리후생 차원에서 지급하던 차량구입비·의료비·학자금 등의 지원금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과정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 사건 노동조합은 설립됐다.

이 사건 배치전환 대상자들과 노동조합은 같은해 9월22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이 사건 인사발령이 부당배치전환과 부당노동행위(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에 해당한다며 구제신청을 했고, 서울지노위는 그해 11월20일 이 사건 인사발령이 부당배치 및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구제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올해 3월13일 부당배치전환 부분은 기각하고 부당노동행위만을 인정하는 구제명령을 내렸다. 위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에 대해 배치전환 대상자들과 노동조합, H회사가 각각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및 문제점

가. 판결의 요지
법원은 인사권에 대한 사용자의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 H회사의 영업손실 규모, 경영 효율화 필요성에 비춰 ODS부서의 신설이 영업기반을 확대해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었다고 보면서 ODS를 전담할 조직을 신설할 업무상 필요성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반면 ODS부서에 배치된 노동자들이 받는 불이익, 즉 상여금은 ODS부서에 특화된 기준으로 지급여부를 결정하면서 성과급은 기존의 방식대로 지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어 ODS부서 노동자들의 경우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이나 업무형태의 급격한 변경 및 정신적 긴장감 또는 낙인효과 등과 같은 불이익은 실질적으로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업무 직종 변경에 따라 예정되거나 수인해야 하는 불이익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1차적으로 성과가 저조한 노동자 88명을 선별한 뒤 본부장 또는 실장급의 감독자 의견만을 반영해 배치전환 대상자 20명을 선정한 것은 H회사에 허용된 인사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더불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ODS 부서로 배치된 노동자라도 실적이 개선된 자는 6개월 만에 다시 영업지점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으므로 이 사건 인사명령 대상자 20명 중 17명이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다는 사정만으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 판결의 문제점
대상판결의 쟁점은 ODS부서 신설에 업무상 필요성, 이 사건 배치전환에 따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상 불이익의 정도, 대상자 선정의 객관성과 이에 따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의 추정 여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 사건 배치전환이 정당하고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을 함에 있어 사용자의 인사재량권은 광범위하게 인정한 반면 노동자들의 불이익은 지나치게 과소평가해 ODS부서의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배치전환 대상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일정한 불이익을 인정하면서도 전체 배치전환 대상자 중 85%가 조합원들이고, 특히 지부장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핵심간부가 모두 포함된 사실의 의미를 애써 축소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평가함으로 인해 사실상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무력화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H회사가 신설한 ODS부서는 증권회사 영업직원이 직접 고객을 방문해 태블릿PC 등을 통해 계좌 개설이나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부서를 의미하지만 이러한 영업방식은 방문판매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문판매법)은 방문판매에 따른 계약서를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 소비자가 언제든 청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금융상품에 관한 예외규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은 사실상 방문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법·제도 하에서는 고작 계좌개설 업무만이 가능한 상황이고 2013년 4월에 발의된 개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ODS부서에 배치된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에 있어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ODS부서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받기 위해서는 계좌개설에 치중해야 하고,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영업방식대로 주식매매 수수료 등을 통해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두 업무 형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즉 ODS부서 업무형태에 따르면 장중이라도 노동자들은 외부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데 이러한 업무형태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기 어렵고 시의적절한 주식매매도 어렵기 때문에 ODS부서 노동자들은 사실상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음에도 대상판결은 이를 너무 쉽게도 인사발령에 수반되는 불이익쯤으로 축소해 버리고 만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불이익을 인정하면서도 대상 부서에 조합원을 85%나 배치하고 특히 지부장·부지부장·사무국장 등 노동조합의 핵심간부들을 모두 포함해 대상자를 선정한 사용자의 행위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본 대상판결은 사실상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형해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 제도는 사용자의 지배·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노동 3권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한 자유로운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당해 사용자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조합원을 비롯한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까지도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 이 사건 배치전환은 너무도 명백하게 ‘노동조합활동을 하면 ODS부서에 배치된다’는 사용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보이고, 이는 당연히 조합원들의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위축, 노동조합 탈퇴나 가입 거부 등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적어도 인사배치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상판결에서 1차 대상자 88명 중 20명을 선정하면서 본부장 또는 상급 감독자의 주관적 평가만으로 조합원 17명을 선정한 점이나 인사발령 당시 노사 간 단체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음에도 어떠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교섭 상대방을 인사배치한 점, 단체교섭 중 지부장을 포함한 핵심 간부들의 직급이 모두 과장 이상이었음에도 사용자가 단체협약 적용범위를 대리 이하로 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결국 단체교섭이 결렬된 점 등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를 추정하게 하는 간접사실로 채택하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보일 정도다.

3. 결어
대상판결과 같은 판단이라면 사용자는 인사재량권을 근거로 특정한 부서를 신설해 조합원들만을 대상자로 선정하거나 핵심간부들만을 배치해 노동조합과 일반 노동자들을 분리함으로써 언제든 노동조합활동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인사명령을 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배치전환의 형태로 발생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사실상 통제할 수 없다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사용자의 인사재량권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인정한 대상판결은 이러한 점에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의 보장을 위한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형화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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