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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해서 절실한…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 민변 노동위원장)
강문대 변호사(법률사무소 로그, 민변 노동위원장)

오랜만에 M에게서 전화가 왔다. M은 내가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맡은 사건의 피고인이었다. 죄명은 방화미수죄를 비롯해 특수공무집행방해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죄 등이었다. 죄명만으로는 무슨 흉악범 같지만 당시 M은 대학교 3학년 여대생이었다. 철거촌 지역에 연대활동을 갔다가 '의리상' 철거민들만 남겨 놓고 빠질 수가 없어 그대로 남아 있다가 경찰과 철거용역이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위와 같은 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초짜 변호사의 미숙한 변론에도 불구하고 M은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됐다. 그 뒤로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 왔고, 몇 년 전에는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오, 오랜만, 잘 지내?"

"저야 그렇죠 뭐, 변호사님도 여전하시죠? 근데 한 가지 좀 물어봐도 돼요?"

M이 내게 물어본 것은 언론에서 기간제법상 고용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언제부터 그렇게 되는지였다. 나는 아직 법이 제정된 것이 아니고 그 법은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기간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으므로 어떻게든 막아 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근데 갑자기 그 법을 왜?"

"아, 예, 우리 남편이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요. 지금 일하는 데서 곧 2년이 되는데 더 일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하더라고요. 내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정확히 확인을 좀 해 달라고 해서요. 지금 기간제법이 악법이라고 말했는데도 자꾸 물어보라고 해서…."

그 순간, M이 결혼 전에 인사차 연락해 왔을 때 내가 남편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M이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서 대략 현장에서 일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이 났다. 아울러 묻지도 않았는데, 운동판에서 만난 건 아니라는 말을 한 것도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M의 남편은 자신의 고용기간이 더 연장될 수 있지 않나 하는 바람을 가지고 지금 기간제법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운동권 부인에게 물은 것이었다.

35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기간제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이 기간제 근로자들의 뜻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며 기간제 근로자들이 그렇게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계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과연 기간연장이겠느냐, 기간제가 유지됨을 전제로 질문을 하니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실 이건 둘 다 맞는 말일 수 있다. 즉 기간제를 전제로 하면 근로자는 당연히 한 번 잡은 직장에서 조금 더 오래 근무하기를 원할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고 그럴 만한 직장이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기간제 근로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보다 기간연장을 원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노동계와 야당은 지금 새누리당의 기간제법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그리고 내가 M에게 알려 준 대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기간제가 지금보다 더 많이 확산되고, 비정규직의 함정에 빠진 노동자는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반대를 하면서도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당장 현실의 기간제 노동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생계를 위해 기간제 고용기간을 연장하기를 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부정하면서 반대한다면, 그 사람은 기간제 노동자의 절박한 상황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추상적 가치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일 수 있다.

이는 고령자 파견도 마찬가지다. 고령자에게 파견과 직접고용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후자이겠지만, 당장의 고용을 위해서는 고용형태는 나중에 고려하는 요인일 수 있는 것이다.

해서 나는 우리의 '반대'가 좀 더 겸손해지고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간제 기간연장과 고령자 파견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겠지만 당장 절박한 현실에 처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들의 소박하지만 절실한 염원을 우리가 뿌리치면서까지 위와 같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다른 차원의 '절박성'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눈앞에서 현금을 뿌리겠다는 자들 앞에서 어음을 발행할 경우 어음을 받는 것이 더 큰 이익이고 또한 만기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증해야 한다. 우리의 투쟁이 반대 투쟁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끝까지 지속돼야만 하는 이유다. 절실하지 않다면 절박하지 않은 것이다.

강문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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