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론학자 존 다우닝은 「변혁과 민중언론」이라는 저서에서 노동쟁의에 대한 언론의 보도행태를 꼬집었다. 존 다우닝은 “대중매체는 노동쟁의 원인에 대한 언급 없이 효과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비판했다. 즉 대중매체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항의시위로 이어지는 노동쟁의 효과만 보도한다.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라는 점은 무시된다. 노동쟁의는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지, 노동자들은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외면된다. 이런 보도행태는 노동쟁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생산의 주역이 아니라 폭력의 대명사처럼 취급된다.

이것은 흘러간 얘기도, 남의 나라 소식도 아니다. 지난 24일 동안 대다수 언론의 보도행태였다. 마치 인질극을 벌이는 살인범을 취재하는 것인 양 실시간으로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1급 수배자를 체포하려 경찰병력 2천명이 집결했으니 언론들은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은 10일 자진 출두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그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이지만 조합원 65만명이 가입한 노동조합 최상급단체의 수장이다. 민주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동단체 중 하나다. 그런데도 한상균 위원장은 조계사에 머무른 24일 동안 ‘소요(?)’를 일으키려 했던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치부됐다. 살인범·파렴치범·강도범도 아닌데도 말이다. 폭동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법원이 그에게 발부한 구속영장 혐의는 ‘도로교통 방해’였다. 세월호 집회를 연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적용된 혐의다. 경찰은 출석조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11월14일에 치러진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경찰이 한 위원장에게 적용하려는 법위반 사항도 있다. 하지만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에는 적어도 ‘도로교통 방해’외에는 적시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들은 “한 위원장이 법과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만 힘을 실었다. 반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머무르며 요구했던 사항도 깡그리 무시됐다. 대다수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한 위원장 스스로 말해야 했다. 자진 출두하며 그가 밝힌 경찰서 출석거부 이유는 이랬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러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았습니다. 실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정부는 저임금 체계를 만들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죽어야 기업이 사는 정책이 제대로 된 법이고 정책입니까? 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1급 수배자 한상균의 실질적인 죄명입니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한 위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소동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는 진실·공정 보도라는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처사다.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보도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머물면서 조계종에 요구한 사안은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개악을 막아 달라"는 것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동법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아 달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한 위원장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다.

한 위원장이 자진 출두한 이날 임시국회도 개회됐다. 여야 지도부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법안을 합의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국회에 노동법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 위원장은 이를 노동개악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양측의 주장을 동등하게 보도해야 한다. 공정보도에 힘써야 한다는 얘기다. 더 이상 한 위원장 거취와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로 본질을 흐리거나 희석시켜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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