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타 만들던 늙은 노동자의 서울 여의도 단식농성장 앞에서 한때 고속열차에 올라 일하던 승무원 한숨이 깊었다. 어디 올라갈 데라도 찾아봐야 하는지를 농담처럼 물었다. 거기 지척 광고탑엔 화물노동자 둘이 올라 농성했다. 어느덧 비바람에 삭아 흐릿한 현수막이 사정을 겨우 알렸다. 그 아래 국회 앞길엔 빨간색 현수막이 매번 말끔하게 내걸렸다. 거기 새긴 노동개혁과 국정교과서와 자유무역협정 따위 알림글은 희망찬 미래를 약속했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 생각은 달랐다. 한자리 모여 목소리를 더했고, 행진했다. 그 길에 차벽이 높았고 물대포가 지독했다. 10만여 폭도의 소요라는 막말 행진만이 막힘없었다. 테러집단을 닮았다는 그 군중의 수괴 양손에 쇠고랑을 채우고서야 사찰을 에워쌌던 수천의 경찰병력이 물러갔다. 수백대의 카메라도 호들갑을 멈췄다. 일대의 교통체증도 끝났다. 종합편성채널 보도차량이 쇠고랑 찬 노조위원장의 호송차량을 카메라 들고 추격했다. 일반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률 위반 등이 그의 죄라고 했다. 조계사 일주문 나서는 길에 눈 붉힌 사람들이 까치발로 서서 저마다 자기가 한상균이라고 외쳤다. 노동개악 반대라고 새긴 펼침막을 들었다. 반대는 죄가 됐다. 언젠가 자동차 만들던 해고노동자는 다시 감옥에 들었다. 얼마 전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던 집회 참가자가 가면을 쓰고 있다. 이마에, 실은 뒤통수에 나를 잡아가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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