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지도부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노사정 합의를 깨지 않으려 한다는 소문이 현장에 파다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해 주십시오.”

지난 9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한 단위노조 위원장은 김 위원장에게 이러한 요구를 했다. 여기저기서 “맞소, 옳소”라는 동조 발언이 터져 나왔다.

김 위원장은 “그곳(국회)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냐. 오라는 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과거 일부 임원이 정치권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어긴 경우가 있어 불신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저는 가지 않겠다 공약했고 규약까지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올해 2월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 정계 진출을 금지하는 규약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임원 역시 정계로 진출하려면 중앙위원회 추천 혹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해명하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위원장 그만두고 가면 되지”라고 수군수군했다. 현장 불신은 그만큼 깊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한국노총 산별연맹·노조나 지역본부를 가면 비슷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과거 경험이 안겨 준 트라우마”라고 했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현장 요구를 외면했던 이들이 남긴 상처라는 얘기다.

지난해 1월 한국노총 임원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됐다. 당시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도부가 정치권과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니 현장이 고사상태에 빠졌다”거나 “지도부는 정치권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내놓았다.

내년 4월은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장 불신이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힘든 시기다. 가령 누군가 금배지를 단다 해도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찾아보기가 어디 쉬운가. 민주노총도 옛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대표를 국회로 보내지 않았나.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정계로 나아가느냐다. 한 산별연맹 간부는 “조직을 입맛대로 활용해서 또 국회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노총은 회복할 수 없는 불신과 비판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한국노총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불출마 공개선언을 요구했던 단위노조 위원장은 “그래야 최소한의 신뢰라도 회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이 '정계 진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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