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소요죄 적용검토를 운운하고, 법안 처리를 다그쳐 대고 있다. 심란한 세상이다. 지난달 14일 민주노총 등이 주최한 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 경찰은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 2015년 마지막이라는 해외순방을 마치고 온 박대통령은 노동개혁법안 처리를 맨 먼저 말했다는 뉴스다. 출근길에 읽고서 나는 괜히 스마트폰을 열었다고 투덜거렸다. 수사권·공소권도 없는 경찰이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니 검찰이 적극 검토하라고 수사 지휘를 한 것인지, 경찰의 수사사법권 행사가 통 납득할 수가 없고,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집행해야 할 행정부의 수장이 영도자라도 되는 듯이 국회를 다그쳐 대니 이 권력분립의 나라가 이상스럽기만 하다.

이미 1차 민중총궐기에서의 불법 집회시위와 관련해 지난달 21일부터 3차례 민주노총 본부와 산하단체 13곳 사무실 등 17곳을 압수수색했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1차 대회를 주최한 46개 단체 대표 전원에게 출석을 통보했으며, 현재까지 무려 1천531명이 수사대상자라고 보도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 발언으로 한껏 기세 오른 경찰은 불법적인 집회시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농민 백남기에 대한 살인적인 물대포 진압 등 경찰의 과잉 대응에 관한 비난을 잠재우고서 말이다.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법안에 대한 분노도 파묻힐 지경이다. 이 나라에서 권력이 하는 말대로라면 1차 민중총궐기를 주최한 단체, 특히 민주노총은 IS에 버금가는 테러단체이고, 대회에 참석해서 복면을 착용하고서 경찰 차벽을 밧줄로 끌어당겼던 조합원 등은 테러리스트라고 봐야 한다. 그런 민주노총과 조합원들이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서울광장에서 집회하고 대학로 서울대병원까지 시위를 평화적으로 했다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2. 집회. 여러 사람이 뭔가 공동의 목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여럿 모이기만 하면 저를 비난할까 봐 공동으로 도모할 게 없어도 모여 있기만 해도 집회라고 불허하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따지고 보면, 집회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여러 사람이 모여 제 의사를 표현하면 집회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게 실내가 아닌 밖에서 하면 집시법이 뭐라 성가시게 구는 옥외집회인 것이다. 집회는 집회고, 폭력은 폭력이다.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으로 모여 폭력을 행사했다면 폭력을 처벌하면 된다. 그러라고 공권력이 있는 거 아니겠나. 폭력집회·불법집회라고 집회 자체가 문제라고 떠들어 댈 일은 아니다. 집회는 그저 모여서 제 의사를 외쳐 대는 것.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제 의사를 날마다 말할 수 있는 자들에겐 쓸데없는 짓이고, 제 의사를 국가의 의지로 행사할 수 있는 자들에겐 불필요한 짓이다. 권력자에겐 쓸데없고 불필요한 집회지만, 그에 복종해야 하는 일반 대중·인민(혹시 오해할까 봐 학술상 용어임을 분명히 밝힌다)에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서 쓸데 있고 필요하다. 특히 권력행사에 참여가 허용되지 않고,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이 권력과 한패로 춤추는 나라일수록 집회야말로 인민이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알리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민이 주인 된다는 것은 인민이 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혼자일 때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에게는 복종하고자 해도 복종할 권력이 없었다. 여럿일 때 권력관계는 존재한다. 여럿이라서 권력의 질서가 있고 그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외쳐진다. 그래서 그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인민의 외침, 절규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민주주의를 기록해 왔다. 권력이 없으면 그에 복종할 인민도 없고 인민이 의사를 표현할 집회도 없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로 권력의 성격을 규정지어 왔다. 사실 구체적인 집회에 관한 태도로 권력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다. 집회를 불온한 것으로 취급하고 규제하는 권력, 집회를 자유로서 보장하는 권력, 집회에서 표현되는 인민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행사하는 권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집회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 중립적인 태도, 그리고 집회를 주권자인 인민의 행동으로 인식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집회를 규제하려는 권력은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허가제로 집회제도를 운영한다. 과거 유신체제와 군사독재 시절에 이 나라에서 권력은 실질적으로 이렇게 운영했었다. 헌법과 법률은 집회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권력을 비판하는 집회는 결코 자유로이 보장되지 않았다. 히틀러의 나치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말고도 인간의 역사에서 권력은 오랫동안 인민의 집회를 이렇게 통제해 왔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아무리 위대한 권력이고 번영의 시대였다고 권력이 국정교과서에 기록했어도 인민의 의사를 통제했던 억압 체제였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 체제는 집회시위를 불법이라고 규정지었지만 인민은 불법적인 집회·시위를 무릅쓰고 억압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권력을 불법이라고 규정지어 왔다. 우리는 불온한 한국현대사가 아니라도 근현대의 세계사를 통해서 분명히 배웠다. 그러니 세계의 역사까지도 불온한 인민의 반항을 억눌러 온 위대한 권력의 역사였다고 기록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시민의 혁명을 배울 수밖에 없는 우리는 집회에 대해 권력이 통제하는 세상에서 인민의 집회가 불법이 아니라 권력이 불법이라고 세계사를 읽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인민을 위하는 나라라고 해도 말이다. 선진화니 경제니 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선전해도 말이다.

집회의 자유. 현재 대한민국헌법은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기본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그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조제1항·제2항). 더는 신고제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권력이 운영하는 짓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1987년 10월29일 개정된 헌법은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민중총궐기 전후에 권력이 집회를 대하는 태도를 보자면 민주노총 등 민중총궐기 주최 단체의 집회는 금지의 대상이지 자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지난 5일, 2차 민중총궐기를 두고서는 아예 봉쇄 내지 진압의 대상이라고 권력은 엄포를 놓았다. 집회의 자유, 따지고 보면 집회에서 표현한 인민의 의사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도록 보장할 기본권이 아니다. 기껏해야 모여서 구호를 외칠 자유다. 집회의 자유는 소심한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 권력에 복종하는 인민의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우리는 민주 쟁취라고 기록해 왔다. 아니 집회·시위의 자유야 말로 민주주의의 판단기준이었다. 권력은 권력이고 인민은 인민이다. 이런 집회의 자유를 말하는 세상에서 권력과 인민의 관계가 그렇다. 인민에게 권력은 그들의 일이다. 그런 나라라도 집회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 나라에서는 이런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다.

인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 민주주의로 보자면 집회에서 표현되는 인민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권력을 행사할 일이다. 집회는 그저 인민의 자유로 보장할 일이 아니라 인민의 의사를 살필 수 있는 일이니 소극적으로 보장할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력에 대한 인민의 참여과정으로 파악해서 보장할 일이다.


3. 1차 민중총궐기 이후에도 이 나라 공권력은 그 집회·시위에서 불법을 진압하는데 열을 올려 왔다. 마침내 오늘은 경찰이 소요죄 적용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다중이 집합하여 폭행·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상 소요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범죄다(형법 제115조). 이미 집회에서 경찰을 폭행 등을 했을 경우에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이 다쳤을 경우에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일반 폭행죄·상해죄에 비해 중한 범죄로 처벌해 왔고, 나아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가중처벌해 왔던 터라 과연 소요죄를 적용한다고 해서 얼마나 더 중하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괜히 민중총궐기를 주최한 민주노총 등을 나라를 뒤집을 폭동이라도 일으키기라도 한 것처럼 해서 집회에서 표출된 민주노총 조합원 등 노동자·시민의 의사를 진압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뿐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집회를 진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노동개혁에 관한 노동자의 의사를 진압하고서 노동자권리 삭감에 관한 입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법 집행을 할 수는 없다. 노동자 의사 표시를 진압하고서 하는 권력의 노동개혁은 권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압일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