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점입가경. 지난 한 달간 ‘청년수당’ 논란에 딱 맞는 말이다. 설마 더한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끝이 없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은 오히려 아름답다. 용돈·퍼주기·아편·바이러스에 이어 범죄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름난 정치인부터 고위관료에 이르기까지 적진을 향한 공세에 숟가락을 얹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헌법학자는 총선이 다가오자 ‘장관’이라는 직책이 헌정체제에서 지켜야 할 위치를 잊고 말았다. 정종섭 장관이 여당의 행사에서 외친 “총선 승리”라는 건배사는 새누리당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국가 집행부 일원으로서 주권의 상징인 입법부 전체의 승리를 바랐던 것이 그의 진심일 것이다. 참으로 헌법적인 마음가짐이다. 며칠 전 검찰은 그의 발언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 장관의 총선 출마는 그렇게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다. 사실 “총선 승리”는 그 자신을 위한 주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복지 대 반복지의 이념 경쟁만이 아니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힘겨루기로만 보기도 어렵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그 주변을 배회하는 무리들이 청년수당에 대해 한마디씩 거드는 모양새를 보면 사태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과잉된 충성경쟁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적장을 무찌르는 무공을 쌓아 공천을 잘 받는 것이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선을 넘고 있는 관료들의 위헌적 언동은 그렇게 설명해야 말이 된다. 위기 혹은 기회의 순간에 인간은 극단의 창조성을 발휘한다.

끊임없는 확전 양상이다. 지난달 5일 이후 청년정책을 둘러싼 정쟁의 와중에 ‘청년정책의 정합성’이나 ‘청년당사자의 필요와 요구’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랜 시간 정책 과정에 참여해 온 청년들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의 쓰임새가 그렇게 돼 버렸으니 당장은 별 수 없다 싶기도 하다.

굳이 저 아수라장에 말을 섞어야 할까 망설였지만, 할 말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헌법을 공부한 장관의 ‘범죄 발언’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청년수당이 범죄면, 그 정책을 함께 만든 청년들은 공범자고 그 정책을 필요로 하는 청년들은 범죄를 사주한 셈인가. 청년들은 스스로의 삶을 죄스럽게 여겨야 하는가.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강한 언어를 동원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는 필요하다. 청년을 비롯한 모든 시민에 대한 모욕을 그만둬야 한다.

청년수당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행태에도 할 말이 있다. 모든 정책은 포퓰리즘적 요소를 가진다. 그것이 민주주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정치공세야말로 나쁜 의미에서 가장 ‘포퓰리즘적’인 것이다. 복지 확대를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는 말은 대중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다시 말해 반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청년수당은 용돈정책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었다. 되묻고 싶다. 청년에게 용돈 주면 나쁜 것인가. 용돈이라도 제대로 줘 봤나. 구직활동을 하는 동안 소득이 없는 청년들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것의 편한 이름이 ‘용돈’이다. 이른바 ‘엄마론·아빠론’을 요청할 때마다 청년들이 얼마나 미안하고 절박한 마음인지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들에게 용돈은 곧 생활비이고, 수십만원에 달하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세대 노동자들은 쉼 없이 일한다. 청년들은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손을 덜 벌리고 싶어 시간을 쪼개 한 시간에 5천580원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이른바 ‘퍼주기’라는 표현도 있었다. 지금까지 ‘저임금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에게는 수조 원씩 인건비를 퍼주며 밑 빠진 독에 물 부어 놓고는, 어째서 청년이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소득을 지원하는 정책은 ‘퍼주기’라며 반대하는가. 앞뒤가 다르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청년수당을 두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라거나 "청년의 건강한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이라 막말한 정치인에게는 심히 할 말이 있다. 문제의 국회의원은 13번이나 당적을 옮긴 ‘대한민국 대표 철새’로 유명하다. 그런 사람이 청년을 위한 정책에 대해 바이러스니 아편이니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권력이라는 아편에 취해 정치를 망치는 바이러스가 누구인지 자신부터 먼저 성찰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본인 지역구인 논산시와 계룡시에 거주하는 단 한 명의 청년이라도 더 만나서 소통해 보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부디 건강한 정신을 되찾으시길 바란다.

앞으로는 그들의 저급한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지 않으려고 한다. 청년들은 그럴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청년을 위한 것’이 무엇이어야 할지, 청년 당사자들의 실제적인 삶과 요구에 근거한 이야기가 시작돼야 한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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