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훈 공인노무사(서울도시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귤화위지(橘化爲枳), 임금피크제는 죄가 없다.

옛날 중국 제나라 안영이 초나라를 방문하자 초나라 왕이 제나라 출신 죄수를 데려와 ‘제사람은 남의 재물을 탐하는가?’라고 시험하자 안영은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초나라의 토질 때문입니다(귤화위지). 착한 제나라 사람이 여기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가 좋지 않은가 하옵니다”라고 답한 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일본에서 시작된 고령노동자를 위한 대책이 한국에서는 고령노동자 노후를 공격하는 탱자가 돼 버린 정부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본다.

일본 정부는 노령화와 연금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001년 연금 수혜 연령을 60세에서 연차적으로 65세(2013년)로 높이고 그 대책으로 정년을 65세(2013년)로 연장하고 연장된 기간만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고령자 연금수급 연령과 정년을 일치시키기 위한 조치 즉, 고령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일부였다.

반면 한국에서의 임금피크제는 고령노동자의 노후대책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제도가 돼 버렸다. 한국에서 연금 수령은 내년부터 62세가 돼야 가능하고 그나마 연차적으로 늦어져서 1969년생은 65세가 돼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정년과 연금 사이에는 2년에서 5년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노령화 속도도 OECD 최고 수준이다. 한국들의 라이프 사이클상 평균 55세에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임금피크제 기간(58~60세) 동안 모은 노후자금으로 퇴직 후 20~30년을 살아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임금피크제를 먼저 도입한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도는 조기퇴출제도로 악용돼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임금피크제가 한국 고령노동자의 생활안정을 흔드는 정책이 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와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부산지하철노조 등 지하철 빅3 노조가 임금피크제에 반발하고 있다. 비록 진통 끝에 서울지하철노조가 타결했지만 나머지 2개 노조가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내년에 직접 임금교섭 투쟁을 결정했다고 한다. 정부기관을 상대로 임금교섭을 결정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이 노조들은 공통적으로 정년 60세 사업장이다. 다른 기관들이 58세에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것과 달리 큰 불이익을 주는 임금피크제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들은 행자부가 올해까지 임금피크제 지침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장에게 내년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페널티를 주도록 해서 노사관계 부당개입과 이중 삼중의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들은 행자부가 도입하도록 압박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안이 연령차별을 금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자부 지침은 임금의 수준 혹은 직급 등에 상관없이 오직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삭감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부산지하철이 1·2급 관리자만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으나 행자부는 전 직원에 대해 도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임금피크제를 미도입 사업장으로 발표했다. 또한 SH공사 등에서 2년에 걸쳐 임금삭감을 하도록 한 것이 행자부 지침(3년에 걸쳐 도입)에 맞지 않아 행정지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노조들은 행자부의 임금피크제는 특정연령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연령차별 금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자부의 임금피크제 지침이 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도입 기관마다 사정이 달라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행자부가 정년 60세인 사업장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58세에서 60세로 연장되는 사업장 달리 이미 60세인 사업장에서는 당연히 큰 반발이 예상되고 연령차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행자부가 안이하게 대응해 반발과 혼란을 초래했다.

행자부가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 대한 근로시간단축과 업무 전환을 권고하고 있어 법 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고연령 노동자들을 쉬운 업무로 전환하는 것은 보상책이 아니라 더 큰 불이익일 수 있는 데다, 임금이 삭감되는 근로시간 강제 단축도 보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청년실업을 해결하자는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청년실업을 대책으로 활용하는 것은 ‘갈증 난다고 소금물을 먹는 격’이다. 행자부는 청년실업 대책을 위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다고 하지만 당장 노후대책이 흔들리는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들의 노후 위기는 더욱 심해진다.

행자부는 공포와 위협이 아니라 합리적 토론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적어도 일본 사례처럼 연금과 정년, 연장된 기간 임금피크제를 연동시킨다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청년채용을 위해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면 고액 임금자의 임금 상한선을 두는 방법 등 창조적 대안도 가능하다.

합리적 대안을 논의할 기회조차 막고 무조건 연내 도입만 강요하는 것은 실적 쌓기에 급급한 행정의 전형적 사례로 퇴행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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