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에 쫓겨 기록을 챙기며 사무실 문을 나선다. 급한 발걸음에 우산은 잊은 지 오래다. 법원으로 향하는 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잿빛 구름 사이로 첫눈이 내린다. 어제까지는 가을이었는데, 단 하루 만에 겨울이 왔다.

눈 내리는 겨울 날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노동자의 현실은 엄혹하다. 정부와 여당은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 권리를 잠식해 오고 있다. 해고제한법리는 간접고용과 기간제의 홍수에 이미 휩쓸려 간 지 오래고, 예외여야 할 비정규 노동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장그래와 푸르미마트는 TV 속 광경에 그치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일상을 짓누르고, 연대와 단결을 풀어헤친다. 노동자 권리를 찾는 싸움은 우리 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일쑤고, 노동은 권리가 아닌 몇 개의 숫자로 변환돼 절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현실을 바꿔 보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면 사용자의 훼방과 공작부터 걱정해야 하고, 어렵게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흔들린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과 재심신청, 뒤이은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법보다 가까운 주먹은 이미 노동조합을 무너뜨린 뒤 유유히 사라진다. 그 틈을 타 일부 법률가들은 자신의 지식을 팔아 거액의 성공보수를 챙겨 함께 떠난다. 노동기본권인 파업을 행사한 결과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업무방해죄 공소장과 거액의 손해배상 소장이 날아들고, 집기에는 가압류 딱지가 덤으로 붙는다.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일을 시킨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현실,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이익을 향유했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나는 사용자가 아니라며 발뺌하는 현실, 개인의 삶을 담보로 조직 이익을 구하면서도 개인의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현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 어디에나 널려 있다. 사용자들은 장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노동자들은 장래 위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 이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재판을 마치고 눈 내리는 서초동을 되짚어 오며, 지금도 거리에서 생존의 위기를 호소하며 연대 손길을 내밀고 있는 노동자들의 얼굴을 그려 본다. 멀지 않은 강남역에서는 스스로 제안한 조정위원회의 조정권고안을 거부하는 삼성전자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하며, 반올림의 노숙 농성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여의도에서는 유력 정치인의 반노동조합 발언에 항의하고 정리해고의 사회적 해결을 염원하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단식과 노숙농성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구로공단에서는 회사의 지난한 부당노동행위를 이겨 내고 구로공단 공장을 지켜 온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지회 조합원들의 천막농성이 두 달을 넘겼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는 이미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으로부터 위장도급 사업장 노동자임을 확인받은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사업을 인수한 삼표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상경노숙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겨울로 치닫는 날씨만큼이나 노동자의 위기, 노동의 위기도 깊어져 간다. 이러한 노동의 위기는 오직 연대로 극복돼야 한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교훈이다. 겨울을 대비하는 것은 비단 두꺼운 외투를 꺼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연대의 따뜻함으로 엄혹한 노동의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은 어떨까. 수첩을 꺼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송년회 일정을 하나만 지우고, 가장 가까이에서 생존의 위기를 토로하는 노동자들의 얼어붙은 손을 맞잡으러 가 보면 어떨까.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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