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인 A기업은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임금체계를 변경했다. 기본급·상여금·각종 수당으로 이뤄진 복잡한 임금체계는 단순화됐다. 기본연봉·성과연봉·제수당으로 바뀌었다. 호봉제 임금 항목 가운데 기본급 또는 기초급은 그대로 옮겨왔지만 성과연봉은 달라졌다. A기업은 직원들을 S(탁월)·A(우수)·B(보통)·C(기본)·D(저조) 등급으로 분류했다. 등급에 따라 +20%~-10%의 성과연봉이 적용됐다. 이를테면 S등급은 20% 인상하되 D등급은 -10% 차감하는 방식이다. A기업이 개별 직원에게 등급을 매기는 방식은 묘했다. 승진을 앞둔 직원이거나 실적을 낸 직원에게 S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상사에게 흠을 잡히지 않고, 무탈하게 지낸 직원은 A·B등급으로 분류된다. 회사에 큰 피해를 끼치거나 사고를 낸 직원들은 D등급에 해당된다. 저성과자 퇴출 1순위로 낙인찍힌다.

공공기관 B기업은 2010년부터 관리직인 1~2급에 한 해 성과연봉제를 시행했다. B기업은 평가지표를 만드는데 애를 먹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정책사업을 집행하기에 실적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B기업이 낸 묘안은 부서단위의 평가다. 이를테면 임대주택의 경우 정부 정책에 따라 10만호 건설이 결정되면 부서단위 별로 물량 경쟁을 벌인다. 임대주택 물량을 많이 챙기는 부서에 높은 가점이 매겨지는 방식이다. 임대주택 총량은 정해진 것이기에 물량배정은 소화능력이나 실력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 임대주택이 몰리는 유력한 지역 부서장 또는 임원에게 줄을 대고 있는 힘 있는 부서장이 높은 가점을 받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기있는 부서에 가면 높은 등급은 덤으로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여기에 부서장을 대상으로 한 임원들의 ‘다면평가’, 청렴·친절 등 ‘외부컨설팅 기관의 평가’도 보태진다. 공공기관 1~2급 부서장들에게 적용된 성과연봉제는 대개 이런 방식이다.

이처럼 지난 98년 외환위기 이후 유행병처럼 도입된 연봉제는 사실상 호봉제의 변형에 불과했다. 계량지표 보다는 비계량지표를 바탕으로 직무평가가 이뤄졌다. 사실상 ‘무늬만 연봉제’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연봉제는 탄탄한 성과평가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임금체계다. 성과측정은 쉽지 않기에 오랜 기간 동안 평가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런 경로를 밟았다. 반대로 국내 기업들은 성과평가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금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정부는 12월 중순에 열리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서 성과연봉제 확대를 결정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5일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공공기관 1~2급 직원에 국한된 성과연봉제는 내년 상반기 내에 3~4급 직원으로 확대된다. 이후 순차적으로 공공기관 전 직원으로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성과연봉제 대상 직원은 개별평가를 통해 최고등급과 최저등급으로 분류하되 연봉격차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는 종전과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 1~2급에 적용된 성과연봉제의 연장선이다. 변변한 성과측정 지표도 갖추지 않은 조악한 연봉제다. 줄 세우기와 보신주의라는 부작용만 불렀다. 그래서 정부는 앵무새처럼 표준연봉제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말로만 떠들었다. 여태껏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경우 실적 측정의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개별평가제도를 바탕으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배짱이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인가. 혹여 '저성과자 퇴출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이러니 공공부문 노동계가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며 성과연봉제 중단을 촉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는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 과반수 노조 또는 과반수 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3~4급에 국한해 성과연봉제를 확대한다 하더라도 공공기관 노조 또는 과반수 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상 성과연봉제는 추진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유치한 협박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식의 강압은 탈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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