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C투자증권이 노조 조합원들만 찍어 방문판매(Out Door Sales·ODS) 부서로 배치한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인정한 부당노동행위를 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정부가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증권업계를 비롯한 노동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부당노동행위, 법원에서 뒤집혀=서울행정법원 제1부(부장판사 이승택)는 HMC증권이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HMC증권은 지난해 7월 희망퇴직을 시행한 뒤 같은해 8월 말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문판매법) 개정에 대비한다며 ODS 부서를 신설해 직원 20명을 발령했다. 그런데 20명 중 17명이 지부장·수석부지부장·사무국장·회계감사를 포함한 조합원이었다. 이 같은 인사발령 뒤 조합원 10여명이 지부를 탈퇴했다.

노명래 사무금융노조 HMC증권지부장을 비롯한 18명은 서울지노위에 부당배치전환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지노위는 그해 11월 부당배치전환과 부당노동행위를 모두 인정했다. 서울지노위는 사측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ODS를 활용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사용자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배치전환 사유와 달리 근로자들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배치전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정했다.

중앙노동위도 "조합원들을 ODS 부서로 배치한 것은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한 부당노동행위"라며 회사가 낸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부당배치전환에 대해서는 ODS가 업무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회사와 지부는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각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ODS 조직 저성과자 퇴출방안 아니야"=1심 재판부는 소송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ODS 조직 신설은 회사의 영업기반을 확대해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이라며 "ODS 조직에 성과가 저조한 직원들을 배치하는 것은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원고 회사는 지부가 결성되기 전부터 ODS 시스템 구축을 위한 준비를 개시했고, 다른 증권사들도 ODS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조합원 축출을 위한 조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저성과자를 ODS 조직으로 발령한 것이 저성과자 직원의 퇴출을 위한 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ODS 조직으로의 인사발령으로 근로자들이 지위에 미치는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고, ODS 조직으로 발령된 후 실적이 개선된 근로자들은 6개월 만에 희망지점으로 발령받을 수 있었다"며 "노조 지부에 가입한 조합원들을 불이익하게 취급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HMC증권 관계자는 "회사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저성과자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만든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다"며 "금융권에 성과주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노동개악 거수기 노릇하나"=지부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노명래 지부장은 "회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조합원들을 저성과자로 만들어 놓고 ODS 부서로 발령한 게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면 뭐가 부당노동행위냐"며 "정부가 밀어붙이는 쉬운 해고를 포함한 노동개악을 합법화하기 위해 법원이 나서 거수기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사건을 대리한 차승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사용자가 업무상 필요성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료에 근거한 주장이 아닌 추상적인 주장만을 통해 특정 부서를 만들고 노조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표적인사를 해도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지 않다고 본 판결"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증권사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노조간부나 조합원들을 찍어 특정부서로 발령한 뒤 저성과자로 만들어 해고해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볼 근거를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홍석환 노조 정책기획부국장은 "회사의 자의적 판단으로 저성과자를 만들어 한직으로 배치하고, 그걸 근거로 다시 해고하는 시스템을 법원이 허용했다"며 "지금도 이런 상황인데 일반해고 요건까지 완화되면 쉬운 해고가 판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화 노조 대신증권지부 사무국장은 "HMC증권 사례는 증권업 전반에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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