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노총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지난 21일, 토요일에 압수수색이 있었다. 나는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했다’고 쓰려다 이렇게 표현을 바꿔 쓰고 말았다. 대한민국 경찰은 판사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했다고 쓰기 싫어서였다. 언론은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1일 오전 7시30분부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금속노조 서울지부·건설산업연맹·건설노조·플랜트건설노조·공공운수노조 등 8개 단체 사무실 12곳을 동시다발로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했지만, 그건 그들의 말이고 나는 내 말을 하고 싶다. 올해로 20주년이라는 민주노총이 설립 이후 직접 사무실을 대상으로 최초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판사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한 것이니 경찰은 적법하게 집행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적법절차에 따라 민주노총은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에게 불법 폭력적인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평화롭게 압수수색을 받았다.

2. 법치주의를 말한다. 집회·시위에 대한 법 집행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전국노동자대회의 날에 벌어집회시위를 두고서 말이다.국가 대한민국은 지금 법치주의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고 야단이다. 온통 법치주의다. 사전에 규제하고 진행 중에 통제하고 사후에 책임을 묻는 데서 불법 집회시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법치주의 침해를 엄단해야 한다고 침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난리다. 오늘 이 나라에서 말하는 법치주의로 보자면 경찰 차벽은 법치주의의 방어벽이고, 물대포는 법치주의의 무력이다. 무엇보다도 법치주의는 공권력이 불법을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권력은 국가권력이고 불법은 국민이 저지르는 것이니 이 나라에서 오늘 말하고 있는 법치주의란 국가권력이 국민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법치주의는 권력이 주인이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이런 법치주의의 실체가 달라질까. 법치주의에 핏대를 세울수록 권력은 강해진다. 법치주의, 오늘 세상의 질서인 법을 지키라는 말이다. 인간의 역사, 권력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언제나 인민에게 강요해 왔던 말이다. 질서를 지키라고 말해 왔다. 권력은 질서에 복종하라고 인민에게 끊임없이 다짐을 시키고 협박해 왔다. 시대는 달라졌다. 질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은 법이 질서인 세상이다. 권력은 여전히 폭력을 독점하고서 인민을 복종시키고 있다. 기술이 달라졌다. 실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권력의 행사가 합리화됐다. 근대, 선출된 권력의 시대가 됐다. 권력은 법치주의를 말한다. 질서를 지키라고 말한다. 오늘 법치주의는 권력의 말이다.

3. 언론은 “경찰에 따르면 압수수색 대상 단체들은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장시간 도로를 점거한 채 사전에 준비한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로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 장비를 손괴하는 등의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민주노총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을 보도했다. 이미 이 나라에서는 지난 14일 민중총궐기는 장시간 도로 점거와 쇠파이프·철재 사다리의 폭력, 경찰 장비 손괴의 불법폭력시위였다고, 그것을 민주노총이 주도했다고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로 알려져 있었다. 이에 따르면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에 따르면 불법폭력시위를 주동한 민주노총에 대한 처벌을 위해 경찰의 압수수색은 범죄혐의자에 대한 당연한 수사절차였던 것이고, 법치주의를 침해한 민주노총에 대한 적법한 법집행이었다. 법치주의의 부정에 대한 부정이니 그것은 법치주의의 회복이었다. 그러니 법치주의가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아니 법치주의에 민주노총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4. 지난 14일, 민주노총은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으로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서 전태일 열사를 기념했다. 해마다 11월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사망한 날에 즈음해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많은 노동자·시민이 참석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반대는 10만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외쳤던 구호였다.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권력의 노동개혁에 대해 반대의 의사표시를 하기 위한 집회·시위였다. 이 세상에서 집회·시위는 민주주의다. 권력이 인민을 동원하기 위해 하는 관제의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인민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이기에,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고, 정치적인 것일수록 더 민주주의다. 지난 14일 전국노동자대회도 그랬다. 권력이 노동개혁의 방안을 정해 놓고서 이를 합의토록 압박해서 노사정이 합의하자 합의대로 노사정의 합의 내지 협의로 추진하지 않고 집권 새누리당이 5대 법안을 발의해서 정기국회에서 입법하겠다고 추진을 하고, 일반해고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서 고용노동부가 발표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노동자권리를 삭감당하는 노동자는 민주노총은 서울의 광장과 거리에 쏟아져 나와 반대한다고 자신의 의사를 외쳤던 것이다. 민주주의, 인민이 주인이 되는 주의라니 권력에겐 분명히 불손한 말이다. 법치주의로 보자면 민주주의는 불온한 말이다.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권력이 인민을 복종시켜 왔다. 유아독존의 권력이든 선출된 권력이든 뭐든 그것이 권력이었다. 민주주의로 보자면 지난 14일 집회·시위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시민이 권력의 노동개혁에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니 민주주의의 행사였다. 민주주의로 보자면 이날 불법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민주주의는 불법과 폭력을 모른다. 권력이 수시로 말하는 것처럼 불법과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불법과 폭력이라도 권력에 대한 인민의 의지가 표현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나는 말하고자 이렇게 모른다고 말했다. 이 근대 이후의 세상을 열었던 프랑스 대혁명도, 이 나라에서 4·19 혁명도,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도,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도 모두 불법폭력의 민주주의였다. 인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권력의 질서를 부정함으로써 불법폭력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는 단순하다. 민주주의는 복종을 모른다. 법치주의의 감옥에 갇혀도 민주주의는 반성을 모른다.

5. 법치주의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권력이 하는 말이고 권력에 타협하는 말이다. 질서가 있어야 민주주의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권력의 질서를 말하면서 그 질서에 복종하고서 인민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평화적으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법은 용납할 수 없고, 불법폭력의 범죄자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대로라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통과시키고 말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4일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서 이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외쳤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입법추진한다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할 수 있다는 등으로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는 노동자라면 이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법정근로시간도 무시한 근로시간 단축, 대통령령에서 정할 수 있도록 한 통상임금, 기간제 노동자를 2년 더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기간제법,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한 파견법 등 노동자가 이 나라에서 종전의 법이 보장한 권리를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걸 법치주의로 윽박지른다고 해서 진압할 수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압수수색으로 진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나라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5대 법안에 대한 노동자의 반대를 진압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진압하는 법치주의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반대 의사를 파악해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입법과 법집행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를 압수수색할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의사를 압수수색할 수는 없다. 정부의 노동개혁 반대의사를 진압하는 법치주의는 사용자 자본을 위한 권력의 통치 기술에 불과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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