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저출산 추세가 우리 공동체의 존속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저출산 공포에 엄살을 떠는 이들 대개가 현존 질서 수호자인 지배자들이고, 이 때문에 저출산 문제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공동체도 누군가의 노동 없이는 누군가를 부양할 수 없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맞닥뜨린 위기인 것이다. 그리고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이른바 ‘헬조선’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첫째,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상용·임시·일용직) 1천908만1천명 중에서 월 100만원 미만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11.9%, 월 100만~200만원 미만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36.4%로 조사됐다. 월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48.3%를 차지한 것이다. 940만명에 이르는 숫자다. 치솟는 집값·전셋값으로 주거비 부담만 해도 엄청난 이 사회에서, 이제 2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기저귓값·분윳값·보육비·교육비는 또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영유아 부모들 사이에서 “둘째는 부의 상징”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둘째, 장시간 노동의 문제다. 아이는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더 힘들다. 저임금 노동은 부모 모두를 맞벌이 전선으로 나가도록 강제하건만, 한국 사용자들은 야근으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문화에서 직장일과 양육을 병행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력단절여성들의 사연을 들어 보라. 법에 보장된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눈칫밥이요, 천신만고 끝에 자리 보전하고 복직해도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건 내 일을 동료에 떠넘기는 대역죄(大逆罪)다. 아빠들도 딱하기는 매한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아빠가 자녀와 같이 놀아 주거나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은 하루 고작 3분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짧다. 장시간 노동이 성평등한 양육 참여의 기회 자체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당국은 자신들의 위법한 행정해석에 따른 주 60시간 장시간 노동제를 기업규모에 따라 몇 년 동안은 합법적으로 좀 더 인정해 주겠다는 소리나 하고 앉았다.

셋째, 자신의 고용 자체가 불안하고 미래 소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2세를 계획하고 출산한다는 건 도박과 같은 무책임한 행동일 수밖에 없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비정규 노동자는 620만명으로 2013년 이후 최대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보다. 당정이 제출한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에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35세가 넘으면 4년으로 늘리고, 파견 허용업무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자, 이러니 하나 낳아 키우기도 빠듯하다.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상향평준화 없이 우리 사회는 저출산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저출산 문제의 핵심이 노동조건 개선이란 걸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미래에 자신들을 부양하는 계급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며 저출산 공포에 사로잡힌 저들이 바로 그렇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보라. 기껏 내놓은 대책이란 게, 저출산 원인이 만혼(晩婚)이라며 앞으로 지자체가 미혼남녀 만남을 주선하고 어린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 가점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한술 더 뜬다. 초등학교 입학시기를 1년 당기고 초등·중고등 교육과정을 각 1년씩 줄여 노동시장 진입 연령을 3년 앞당기는 것도 고민하겠단다. 쓴웃음이 난다. 엄청난 규모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사교육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무려 학제 개편이라니! 그들의 위기의식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왜 핵심 문제인 노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나.

우리는 그 답도 알고 있다.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상향평준화는 자본 이윤의 전반적인 하향평준화와 동의어기 때문이다. 내일 세상이 망한대도 당장 자본의 이윤은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게 그들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뒷일은 난 몰라! 이것이 모든 자본가,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표어”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저출산 대책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동개악을 시도하는 그들에게 대체 무얼 기대하겠는가.

그들에게 말해 주자. 인민은 바보가 아니라고. 당신들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도 우리의 인간다운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바뀔 건 아무것도 없노라고. 촌스러운 출산 캠페인만으로 개체 번식을 결심할 무지몽매한 인민은 더는 없을 만큼 역사는 전진했다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가 이 사회를 좀 더 노동친화적인 사회로, 좀 더 성평등한 사회로 바꾸지 않고서는, 불행하게도 우리 역시 공멸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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