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사람들은 미장공을 노가다로 인식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장은 오랜 숙련이 필요한 일이에요. 저는 건축 일반시공 기능장·문화제 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입니다. 15살에 미장공구를 잡은 뒤 손에서 공구를 놓은 적이 없어요. 사고 없는 공사와 하자 없는 공사 두가지 원칙으로 건설현장에서 40여년을 일했습니다.”

미장전문가인 박용곤(56·사진) ㈜제이에이치건설 작업반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4년 미장일을 배웠다. 그때 일당 800원을 받았다. 일감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미장공을 택했다. “손기술이 남다르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41년이 지났다.

지방에서 한옥과 양옥의 미장기법을 배운 그는 스무 살 때부터 미장공 중에서 ‘에이스’로 통했다. 20대 초반에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장일을 했다. 중동 지역에서 땀흘려 번 3천만원으로 1988년 결혼을 했다.

박 반장은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자격을 취득한 뒤 미장공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2015년 건설기능인의 날 기념식에서는 최고 영예인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매일노동뉴스>가 기념식이 끝난 후 그를 만났다.

- 숭례문 복원공사에 참여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네요.

“김진욱 명장이 내 미장 실력을 알아요. 문화재 복원할 때 나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 복구공사까지 하게 됐죠.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건설노동자가 국보 1호 복구공사에 참여해 가슴이 벅찼습니다. 미장공 중에 한옥 미장을 나처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15살에 미장을 처음 했을 때만 해도 지방의 주택은 현대식 주택이 아닌 한옥이었어요. 일감이 들어오는 대로 일을 하면서 엄격하게 미장을 배웠습니다. 한옥 미장은 시멘트가 아닌 모래와 석회를 섞어 써요. 40여년 미장경력에는 한옥 미장경력도 포함돼 있습니다. 숭례문 복구가 끝난 지 3년이 지났는데 미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없지 않습니까? 그만큼 미장이 제대로 됐다는 얘기죠.”

- 건설기능인으로서 후배 양성을 하시는데요. 현장에서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2009년 경희직업전문학교에서 미장공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보니 문제점이 보이더라고요. 강의를 들으러 온 건설노동자들도 건설기능인이 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어요. 자격증을 보유한다고 일급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심지어 (실업급여를 받고) 시간 보내려고 온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건설기능인에 대한 수요 자체가 노동자나 회사 모두 높지 않았어요. 안타까웠습니다. 미래를 위해 건설기능인이 되고 싶은 수강생들은 남으라고 했죠. (미장 방법을) 부분동작으로 나눠 보여 주면서 가르쳤습니다. 수강생 중에 기능경진대회에 나가 미장부문 1위를 한 사람도 있어요. 건설기능인들이 숙련된 기술만큼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전이 생기고 젊은 인력도 유입되는 겁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미장공으로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미장공으로서 영광이고, 우리 집안의 영광이죠. 앞으로 건설기능인들이 철탑보다 격이 높은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께서 건설기능인에게 직접 상을 주고, 손을 잡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미장공 후배들을 양성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어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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