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권 임금체계 개편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호봉제를 개인별 성과에 따른 연봉제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경영진은 적극 호응하고 있다. 몇 개 금융기관은 협상 테이블에 성과연봉제를 올려놓았다. 노동계는 총력대응을 천명했다. 금융노조는 지부대표자회의에서 투쟁일정을 확정했다. 한국노총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에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9·15 노사정 합의를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rh 행동하겠다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금융권 성과주의 확산 어떻게 봐야 할까.

금융회사 임금체계 손대는 건 정부의 월권행위

나기상
금융노조
교육문화홍보본부장

정부와 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을 핑계로 금융권 임금체계에 손을 대고 있다. 금융권의 임금체계는 노사가 금융 환경에 적합한 구조와 필요에 맞춰 도입한 것이다. 정부가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라고 지시할 수 있는 소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나서 노사 자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의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현재 금융권은 성과급제를 도입할 여건이 형성돼 있지 않다. 은행에는 창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고, 자동화기기를 관리하는 직원이 있다. 공과금 수납을 담당하는 직원도 있어 각자 역할이 정해져 있다. 영업 실적을 높일 수 있는 직원도 있지만, 직무에 따라 영업 실적을 높이는 것이 어려운 직원이 있다. 직원 개개인의 실적을 측정할 기준도 없다. 금융권에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직원들끼리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무리하게 실적을 높이기 위해 예금상품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펀드 등을 고객들에게 팔아야야 한다. 성과급제 도입으로 인한 피해가 결국은 고객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직원의 성과를 측정해 결국에는 퇴출 프로그램으로 작동할 것이다. 정부는 노사 자치주의를 위협하는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임금체계까지 정부가 나서 손대려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임금유연성 확보해야 고용안정으로 연결돼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보다도 경기 부침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금처럼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업이 경기변동을 견뎌 내려면 일정 수준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임금이나 고용측면에서 유연성이 전혀 없으면 기업이 망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하고, 몇 년에 한 번씩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우리나라는 노동법과 외부노동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평소 정규직 고용유연성을 확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반면 임금유연성은 고용유연성보다 상대적으로 쉽다. 임금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결국 고용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산업 노동계가 임금유연성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경우 결국 심각한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만 유리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금융권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 노사가 함께 윈-윈해야 한다.

물론 임금체계 개편은 일방이 힘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은 아니다.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임금체계 개편은 깊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지난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에도 은행 직원 40%가 구조조정 됐는데, 불신과 반목의 원인이 됐다. 대화를 통해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게 시간은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최선의 지름길이다.

전체 노동계 확산 지렛대 되지 않게 싸우겠다

홍석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

정부가 금융권을 중심으로 성과주의와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안착화시키려고 힘을 쏟고 있다. 의도는 분명하다. 노동시장 구조개악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기 전에 금융권에 먼저 도입해 이를 기반으로 전체 노동계로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실 금융권 성과주의는 이미 상당히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시도 이전부터 성과에 따른 임금·성과급 등에 대한 차별과 해고 위협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희망퇴직과 같은 방식으로 상시적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회사가 찍은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만들고 대대적인 퇴사 압박도 자행되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존 업무와 무관한 부서배치, 모멸적인 교육 등을 통해 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문제는 회사의 평가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며, 성과배분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자본간에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성과주의는 개별 노동자 간의 경쟁만을 부추겨 자본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 노조는 정부와 자본의 성과주의, 저성과자 해고제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총 투쟁계획에 따라 정부·여당이 입법을 강행할 경우 즉각적인 총력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또한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의 이런 시도에 대해 노조 차원의 투쟁 또한 병행할 것이다.

금융기관 금융위기 취약하게 만들어

임수강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성과주의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좁게는 성과와 보상을 연계하는 성과주의 임금 의미로 사용되고, 넓게는 기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동통제를 강화하는 의미로 쓰인다. 우선 성과주의가 도입되면 내부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진다.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이 심해진다. 지금도 증권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직장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재계는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하는데 연구결과를 보면 상관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거시적·사회적 수준에서 보면 성과주의는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 특히 금융이 그렇다. 경쟁적으로 성과주의를 한다는 얘기는 곧 자산을 무분별하게 확대한다는 것이고, 이는 상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상품을 많이 팔다 보면 개별 기관은 이익을 낼 수 있지만 금융시스템은 붕괴된다. 가계대출을 늘리고, 신용이 취약한 부실기업에도 대출을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그렇게 온다. 실제 2007년 은행들이 외국환어음을 경쟁적으로 인수한 적이 있다. 은행들이 수출환어음을 사들이면서 수출업체에 외국 수입업체 대신 돈을 미리 지급하고 나중에 수입업체로부터 그 돈을 받는 형식이다. 수출기업에 미리 돈을 빌려주는 방식인데 직원들에게 대출금액을 할당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꺼번에 부실화되면서 국가가 지급보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회적인 비용이 된 것이다. 개별은행에게는 이익일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비용이다. 종합하면 성과주의는 공공성을 해치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킨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을 금융위기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해악이다.

직무평가 기준 없는 성과급제 도입 시기상조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

금융회사들은 단일 호봉제로 인해 능률성이 떨어져 효율성·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과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일면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부작용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직원들의 다양한 업무와 업무량 등을 분석·평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급제 도입은 시기상조다. 성과급제에 대한 내부 반발이 있는 상황에서 강행 추진하면 부작용만 더 키운다.

은행에는 다양한 업무가 이뤄진다. 감사업무·영업업무·창구업무 등에 직원들이 나뉘어 일한다. 유동인구가 적어 한적한 영업점이냐, 은행을 찾는 사람이 많은 영업점이냐에 따라 업무환경과 업무량도 다르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손해 본다는 느낌이 직원들 사이에서 퍼질 수 있다.

직원들 사이의 위화감도 커진다. 호봉제는 연대감·동질감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 성과급제는 노사관계를 형해화하거나 직원들 유대감을 옅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반드시 노사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높은 성과를 받기 위해 은행 직원들은 금융상품 판매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고객들에게 잘 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 개인이 금융사에게 책임을 묻기는 매우 어렵다.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최대한 없애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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