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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포퓰리즘

돈이 좋다 했나. 정부가 수십 억원을 들였다는 노동개혁 광고를 기억한다. 거리를 빨갛게 수놓았던 여당의 현수막도 인상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임금피크제와 해고요건 완화를 청년일자리 대책으로 둔갑시켰다. 기가 막힌 ‘청년일색’으로, 내용이야 어찌 됐든 청년만 들먹이면 된다는 식의 영리한 상술이었다. 묻지 마 식의 고용창출 약속이 넘쳐났다.

이제 정부는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는 일에까지 ‘청년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큰소리로 32번이나 '청년'을 불렀다. 물론 그곳에 청년은 없었다. 청년의 삶도, 목소리도, 정책도 없었다.

그런데 청년을 위해서라면 펀드에 돈이라도 내놓으라며 기업가 주머니를 노리던 정부와 여당이 언젠가부터 ‘청년을 위한 것’이라면 질색을 하며 포퓰리즘이니 용돈정책이니 퍼주기니 하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꼴이다. 발끈한 모양새이기도 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정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서울시는 종합적인 청년정책으로 '서울형 청년보장' 정책을 발표했다.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을 비롯해 일종의 구직안전망으로 미취업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신규사업도 포함됐다. 정식 명칭은 '청년활동지원'이지만 '청년수당'으로 불리고 있다. 성남시는 청년에게 연 100만원 상당을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선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구직수당은 실업부조 성격을 가진다.

청년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흐름을 이른바 '청년수당'으로 통칭해 볼 만하다. 2015년 하반기에 다양한 청년수당으로부터 청년정책 전환기가 열리고 있다.

청년이 겪는 삶의 문제는 복잡해지고 있는데, 정책은 그대로다. 말만 무성한 기존 청년정책은 현실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기업에게 인건비를 지원해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임시방편 고용창출대책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든 일자리만 만들면 그만, 개수만 늘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한심한 대처가 이어진 사이에 ‘정책공백’은 더욱 커졌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동안 청년의 삶은 더 나빠졌다. 사회로 나아가는 이행의 과정에서 각종 위기에 빠지는 청년은 디딜 자리 하나 없이 ‘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청년정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기존 정책과 제도가 담아내지 못했던 청년의 구체적인 현실에 한 걸음 다가서려는 시도다. 현 시점에 ‘청년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청년고용을 명목으로 기업에게 퍼주는 방식이 아니라 청년들의 삶과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열정페이에 의해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청년에게 새로운 ‘시간’을 돌려주는 정책이다. 청년이 처한 위험에 대한 ‘공정한 책임분담’ 합의다. 모든 시민이 거쳐 가는 ‘청년’의 상태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의무를 밝히는 선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사회보장위원회를 앞세워 지방자치단체의 의미 있는 노력을 방해하는 ‘참 할 일 없는’ 정부에게 묻는다. 수조 원을 쏟아붓고도 ‘이 모양 이 꼴’인 청년정책의 실패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제대로 된 역할 분담은 어떠해야 하는가. 포퓰리즘 정치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여당의 정치인들에게 되묻는다. 기업에게 돈을 주는 것은 ‘고용보조금’이라는 우아한 이름을 붙이면서, 왜 청년을 지원하는 것은 ‘용돈정책’인가. 노동유연화의 반대급부로 실업안전망을 강조하면서, 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에게 절실한 구직안전망은 외면하는가. 청년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는 청년을 위한 지원을 퍼주기라 매도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의 의미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혹시나 ‘보통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사회 밖에 내몰린 이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지금 태동하는 새로운 청년정책은 포퓰리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필요와 공익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더 포퓰리즘적이어야 한다. 무상급식도 처음에는 그랬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정준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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