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4.21 일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민주노총 법률원의 노동자이야기
창조경제는 멀리 있지 않다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정부와 여당·경제단체·보수언론은 미국을 노동시장 개혁의 이상적 모델로 거론해 왔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해고야(you're fired)” 한마디에 바로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나는 장면이 그들이 꿈꾸는 노동시장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고용유연성이 미국 사회를 더 낫게 만들지는 못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임금증가율이 괴리돼 그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성장의 과실은 기업이나 부자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런 미국 현실에 대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조차 소득불평등이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며 소득불평등 해결이 IMF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미국 사회는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불평등 심화가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과 관련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후 틈만 나면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6월에는 “노동조합을 강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고 말했고, 올해 9월 노동절 기념연설에서는 “자신이라면 좋은 일자리를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겠다”며 미국인들에게 노조가입을 권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기업인들과 노조지도자들, 노동자들을 초청해서 연 '노동자의 목소리' 간담회에서도 청년세대나 독립계약자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더 쉽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화와 모바일 기술 발달, 산업구조 변화로 예전처럼 같은 장소에 모여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연대를 표현하고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노동조합 강화 담론은 사실 온건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발언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임금 등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보다 높다는 통계를 근거로 노동조합을 통해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번영의 상징인 중산층은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강력한 목소리를 토대로 나타날 수 있었는데, 1950년대 35%에 달했던 노동조합 조직률이 11%대로 떨어진 현재로서는 중산층 붕괴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얼마 전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가 하청노동자들과 원청 대기업과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한 것과 연방정부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것도 노동조합의 교섭력 강화와 실질임금 상승 없이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 해소와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업종에서 저임금 일자리 증가, 시간제 임시직 일자리 증가, 하청 노동 증가로 인한 고용불안정과 임금하락에 대처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자세는 이렇다. 이제는 더 이상 고용유연성 확대를 통한 성장이나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지고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시애틀·샌프란시스코·LA·뉴욕이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인상하기로 결정했고, 최저임금 인상이 차기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이제는 실질임금 상승을 통한 경제활성화가 대세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미조직·간접고용·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 3권 사각지대에 있고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한다. 임금불평등 지수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라는 공식 통계도 무시한다. 한국은행마저 2013년 한국 고용의 질 지수가 38.8로 OECD 27개국 평균인 55.8에 한참 못 미친다고 발표했는데도, 기간제와 파견노동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근기법상 해고제한 규정의 규범력이 약해 대다수 노동자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당하고도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제는 기업의 민원을 받아들여 저성과만을 이유로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지침을 만들겠다고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주장에 대해서는 경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개혁의 적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한다.

창조경제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정부가 창조적인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과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심화하고 경제 활성화는 요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희망 없는 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방법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탁선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탁선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