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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너는 나의 용기] 적은 분노와 용기, 그리고 혁명을 부른다
   
 

“적이 나를 죽도록 미워했을 때/ 나는 적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미움을 배웠다/ (중략) / 오오! 사랑스럽기 한이 없는 나의 필생의 동무/ 적이여! 정말 너는 우리들의 용기다.”<임화, 적(敵) 중에서>

대선을 앞둔 2012년 11월 어느 날, 여의도 샛강 지구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전 정권 청와대 대변인이자 TV 시사토론 진행자인 이지선. 이른바 386 출신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입술이 꿰매지고 얼굴이 함몰된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어 대북사업가 출신 정치인, 학생운동을 돕던 출판사 ‘광해사’ 사장, 광해사에 원고를 맡긴 대학교수가 차례로 살해된다. 영등포경찰서 강력반장 정형균은 피살자들로부터 군 복무 중 숨진 형 성재의 얼굴을 본다. 그들은 대학 시절 형이 주도해서 만든 학생운동 조직인 독서모임 파스큘라의 멤버들이거나 그와 관계했던 인물이다.

시대의 어둠 가르는 사회파 추리소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작품이 등장했다. <화차>로 잘 알려진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미야베 마유키가 떠오르는 장편소설 <적, 너는 나의 용기>(사진·새움·값 1만5천원)가 출간됐다.

저자 우태현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대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의 처녀작인 <적…>은 한시라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사회파 추리소설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현대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간의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다.

형균은 사건을 쫓으며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한다. 위남청. 이지선이 피살되기 전 과거 함께 학생운동을 했으나 변절한 이들이 초청한 토론회에서 내뱉은 말이다. 정백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과 최헌재 신보수주의연대 청년위원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토론회장을 빠져나간다. 소설 속에서 ‘김종철 사건’과 정백의 변절, 주사파 등이 언급되며 정치소설 면모도 보인다. 현실에서 박종철이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선배 박종운의 행로가 투사된다.

도전자를 처형하는 사회로부터의 단절

소설에서는 살육자의 뒤에 있는 그림자를 주시한다. 주범과 종범. 그들은 서로의 이해를 위해 손을 잡았다가도 언제든 먹고 먹히는 관계로 돌변한다. 최초의 그림자는 성재를 죽음으로 내몬 퇴직형사 천갑. 학생운동을 때려잡고자 악랄한 고문을 마다하지 않던 그는 퇴직을 해서도 주범의 뒤를 봐주며 이권을 챙기는 데 몰두한다. 고문기술자 아무개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뒤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권력자, 그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 뿌리 깊은 권력과 그들의 하수인이 된 변절한 동지들이 한때의 민주투사들에게 빨갱이·종북 딱지를 붙이는 시대.

저자는 성재의 친구 백시우에게 미래를 걸어 본다. 성재를 배신한 인물로 알려져 오랜 고통을 겪으면서도 노동현장에 투신해 과거의 헌신을 지키고 있는 사람.

“다시 혁명이다. 과거의 적폐와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도전자를 잔인하게 처형하는 사회로부터 온전하게 단절할 수 있는 단호한 혁명, 그것이 필요하다.”

적은 강렬한 분노를 부른다. 분노가 있어야 용기를 낼 수 있다. 작가는 다시 한 번 적과 맞설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묻는다. 우리 시대의 적은 누구인가.

소설은 로댕의 ‘지옥의 문’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서기장 임화의 시를 단서로 뿌려 놓으며 마지막까지 연쇄살인마를 쫓는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연윤정  yjyo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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