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1995년 11월11일 연세대 노천광장에서 창립대의원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 지 꼭 20년이다. 민주노총은 우리사회 개혁의 주력군이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노조운동의 버팀목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대기업노조 중심의 한계에 매몰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분명한 진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들었다.



전태일 정신 구현·연대 확장·노동정치 문제에 고민해 달라
 

▲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민주노총은 노동민주화를 일구겠다는 정신으로 노동자와 소외된 노동자를 위해 20년을 열심히 달려왔다. 민주노총 출범의 밑바탕에는 전태일 정신이 있다. 청년 전태일·노동자 전태일·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사랑의 전태일·연대하는 전태일을 마음에 품고 전태일을 따라 살겠다는 마음으로 민주노총 깃발이 올랐다.

이제 이 마음을 새롭게 다시 한 번 발현해야 되는 때가 온 듯하다. 전태일을 추모하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태일 정신을 이 시대에 맞게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지 고민하는 민주노총이 돼야 한다.

전태일은 죽으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는데 지금 우리는 근기법을 개악하지 말라고 싸우고 있다. 다시 근기법으로 정권·자본과 대항하고 있다. 조직 노동자가 그동안 힘 있게 투쟁하며 책임 있게 노동운동을 해 왔다. 여기서 한걸음 더 폭을 넓혀야 한다. 비정규직과 소외당하고 있는 소수자,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 외의 다른 부분, 농민과 도시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연대의 폭도 넓혀 나가야 한다.

노동정치에 대한 책임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회피할 수 없는 과제다. 어떻게 노동정치를 일궈 나갈 것인지 조금 더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소외된 노동자에게 문턱 낮추는 민주노총이 되길
 

▲ 강문대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민주노총은 지난 20년간 기업단위 노동자 근로조건과 함께 노동자의 정치적 지위를 크게 향상시켰다. 사회운동적으로도 선도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해 온 점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직과 자금을 투자했는가와 관련해서는 아쉽다. 산업재해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안전문제는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사후적 대처에 그친다. 보완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미조직 등 소외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갖기를 요청한다. 소외노동자들은 상담이 필요해 내셔널센터를 찾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찾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눈길조차 마주칠 사람이 없다. 좀 더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편안히 민주노총을 찾아올 수 있도록 당직을 두는 등 상담과 안내가 필요하다.

이 밖에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의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에 묻혀 자칫 소외노동자 문제를 놓치고 대기업 조직노동자 문제에 휩쓸릴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노동운동으로 나아가길
 

▲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민주노총 창립 20주년을 축하한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더불어 주 5일 근무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건설, 비정규 노동자 보호 같은 여러 측면에서 연대와 경쟁을 통해 많은 성과를 함께 일궈 온 조직이다. 내년 3월 70주년을 맞는 한국노총의 힘만으로는 버거웠을 일도 적지 않았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 또한 더욱 선명한 법이다. 민주노총은 87년 체제의 산물이자 87체제를 끌고 왔던 주요 동력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는 97체제를 넘어 2007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2017체제를 준비해야 할 때다.

민주노총이 야심차게 출발할 수 있었던 당시 조건들은 반전됐고 노동운동을 둘러싼 정세는 정치·사회 전반의 극심한 보수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노골화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동운동은 청년·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기본권 확대·사회안전망 확충·경제민주화 쟁취 같은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운동의 생명은 단결과 연대다. 양대 노총이 연대하고, 적어도 상호 조율된 정교한 역할 분담이 있었을 때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사회발전과 노동자 권익신장에 더욱 효과적이었고 평가한다. 이제 변화된 정세에 맞춰 보다 효과적인 연대, 나아가 노동운동의 대통합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다. 70년의 지혜와 20년의 힘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제도는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 또 힘의 관계를 매개로 현실에 구체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최근 현장의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복수노조 악용 사례를 보면 노동운동의 단결과 연대가 왜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이 세계 노동운동이 1기업 1노조, 1산업 1산별, 1국 1노총을 추구해 온 이유일 것이다.

미조직·청년·여성 노동에 전폭적인 자원을 쏟아야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노동현장에 조합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안착시키는 데 민주노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진지역할을 했고 전략적인 비전을 가진 노동운동의 상을 정립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20년 동안 했던 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20주년 생일을 맞아 쓴 소리를 할 필요가 있다. 대중조직의 힘은 쪽수다. 다수가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조직된 비정규 노동자·여성·청년에 있어 민주노총이 이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화와 미조직 노동자의 현안 문제에서도 민주노총이 개입하지 못했다.

2천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데 계급 대표성이 대단히 취약해진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자원을 비정규 노동·청년노동·여성노동 해결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 사업의 순위에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우선적으로 배치돼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 중심의 이해관계를 혁파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를 대변하고 조직할 수 있게 노동운동의 비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없이는 민주노총이 우물 안을 벗어날 수 없다. 고공농성도 장기화 되고 있고 다양한 현안이 있는데 실제 승리할 수 있는 투쟁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에 있는 위원회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저임금위원회·노사정위원회 등에 참여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터부시하고 개입하지 않는 현재 상태로는 민주노총은 어렵다. 공공부문·민간부문까지 총망라해서 민주노총이 개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가져야 한다. 20년을 맞은 민주노총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시기다.

변화하는 노동형태에 따르는 문제들에 더 함께하길

▲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민주노총 20주년을 축하한다. 유럽은 정당이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끈이 돼 온 반면 한국은 그런 게 없어 민주노총이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회 의제를 다뤄 오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동안 민주노총이 품은 조합원들의 노동형태와 현재 청년들의 노동형태는 다른 것 같다. 전자가 생산부문 정규직 중심이라면 후자는 서비스부문 비정규직이 많다. 별도 청년조직이 나온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그건 민주노총을 평가할 문제라기보다는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인 거라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그런 새로운 노동형태의 출연에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좀 더 여지를 열어 주길 바란다. 최근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위원회를 발족해 청년문제 등 여러 사회 의제에 함께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도가 이어져 일상적인 상호 연대로 발전했으면 한다.

일자리뿐 아니라 편하고 안전하게 출근할 권리, 퇴근해서 돌아가 편히 쉴 집까지도 결국은 일하는 사람의 삶과 노동을 보장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안전망, 주거권 확충은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그에 대한 과감한 타협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민주노총이 더 둘러봐주고 최대 규모의 노동조직인만큼 그 무거운 역할을 상기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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