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우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던 지난달 31일 밤, 입국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껏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평양의 가을 하늘이 한여름 밤 꿈에서나 봤던 듯 아련하고 아득하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면적 노동개악과 세월호 진상규명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등 전쟁 같은 치열한 상황을 맞아, 3박4일을 뚝 잘라내어 평양에 간다는 건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조직적으로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 기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 기간 및 준비 물량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과거 군부독재 시절로 돌아가려는 박근혜 정권의 대국민 전쟁선포에 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 내고 민주노조를 사수해 내야 할 책무를 자임하고 있는 민주노총 입장에서 8년 만에 이뤄 낸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민주주의와 민주노조 사수와 함께 민주노총이 반드시 실현해 내야 할 핵심 의제 중 하나가 통일 아닌가. 결국 과감한 조직의 판단으로 평양행을 결정했다.

16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축구대회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는 1999년 평양에서, 2007년 창원에서 치러진 바 있다. 이번 평양행을 포함하면 세 번째 행사였다. 규모도 적지 않았다. 남측 참가단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각각 80명씩 총 160명에 이르렀다.

통일축구 행사로는 16년 만에 이뤄진 평양행이었다. 지난 MB정권에 이어 8년 만에 진행된 대규모 행사였던 만큼 추진 과정이나 평양 현장에서의 심리적 긴장도도 높았다.

평양 체류기간 중 많은 장소를 방문했고 끼니마다 최고의 음식도 맛봤지만 역시 메인은 통일축구대회였다. 15만명을 수용한다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벅차 왔다. 관람석이 3층으로 지어진 매머드 경기장에 들어서자 2개 층을 빈틈없이 꽉 메운 10만명의 관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관객들의 환호소리, 지금도 그 감동을 잊기 어렵다.

행사 의전 역할도 있었지만 선수단 코치로 참가했던 필자는 그 감회가 더욱 깊었다. 필자는 민주노총 선수들에게 상대가 넘어지면 손잡아 일으켜 주고 항상 웃으며 서로 격려하자고 강조했고 경기 직전 민주노총 선수단 모두에게 평생 최고의 기억을 선물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서로 화합하고 격려하면서 뛰어 보자고 했다. 경기 직후 선수들은 약속이 지켜졌다며 북측 선수단과 서로 포옹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단일기 들고 경기장 트랙을 달렸다.

북측의 모든 의전은 극진했다. 그런 경험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국가 내빈 의전 수준으로 치러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우리를 대하는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관계자들의 태도는 정중했고 상식적이었다. 모든 현장 일정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가능하면 우리 입장을 경청하고 수용했다.

가족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던 남북노동자들

이동하는 버스에 동승했던 조선직총 관계자들과 우리 참가단은 서로 가족 얘기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자녀가 몇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알게 됐다. 어디서나 부모 노릇 하기가 만만치 않다는데 공감하면서 서로 웃기도 했고 남이든 북이든 부모 마음대로 커 주는 자식들은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웃고 나서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우리 이제 언제 또 만날 수 있지?’ 하는 마음에 찡한 눈빛을 교환했다.

"많이 아쉽습니다. 더 따뜻하게 정담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 가슴을 활짝 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이후 다 털어 내고 여러분들로부터 받은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만 한가슴 담아 가겠습니다."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 환송만찬장을 숙연하게 했던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환송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역시 만나야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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