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다시 시작인가. 지난 6일 매일노동뉴스는 ‘신의칙’ 기준법리를 두고서 “법원은 최근 인천 소재 시내버스업체 시영운수 소속 노동자 2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고 보도했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다 끝난 줄 알았던 통상임금 전쟁이 2라운드로 접어든 것이”라며 “1라운드가 ‘고정성’ 싸움이었다면, 2라운드 쟁점은 ‘신의칙’”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이라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선고한 통상임금 신의칙 법리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하면 될 일을 그때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제 다시 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2. 신의칙. 통상임금사건에서 새로운 쟁점이 아니다. 그러니 2라운드라고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아니다. 이미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판결 이전의 소급분 청구는 신의칙에 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신의칙 법리에 관해 대법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시를 하기 이전에)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측이 앞서 본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돼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13.12.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이렇게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신의칙 법리가 탄생했다. 이처럼 대법원은 첫째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고, 둘째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 등 임금조건을 정했으며, 셋째 이후 근로자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 임금을 청구하는 경우 그로 인해 사용자에게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을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있다면 그 추가임금의 청구는 신의칙 위배라고 판시했던 것이다. 그 뒤 수많은 통상임금 사건이 있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법정수당을 추가 지급하라는 소송이었다. 통상임금 해당성을 두고서 재직자 조건 및 일정근무일수 충족 조건이 일부 사업장에서는 문제됐고, 신의칙을 두고서는 당기순이익 등 기존의 경영상태와 무관하게 모든 사업장에서 문제됐다. 모든 사업장의 사용자가 신의칙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장 사건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됐고, 다른 사업장 사건에서는 기각 판결이 선고됐다. 어느 정도가 과연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에 그로 인해 사용자에게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을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는 것이냐를 두고서 다툼이 진행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판시한 신의칙 적용요건의 해당성을 두고서 원고·피고 간에 법정에서 난타전이 전개됐다.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액과 당기순이익 등 회사 경영실적 등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보충의견으로 밝힌 외에는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않아 더욱 논란이 돼 온 것이다.

3. 이 세상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복종하는 계약, 근로계약은 근로시간과 임금에 관한 계약이다. 통상임금은 임금의 문제고, 근로시간의 문제다. 그래서 노동자권리에서 중요하다. 특히 연장·야간·휴일 등 많은 법정 외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세계 최장 수준의 장시간 노동에 종사해 온 이 나라 노동자에게는 통상임금을 바로 세워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기준법은 1주간 40시간, 1일 8시간 이상을 근로할 수 없도록 법정근로시간을 정했다(제50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서 노동제를 노동자의 권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를 초과해서는 일할 수 없도록 국가의 법으로 이렇게 규제한 것이지만, 근로기준법은 예외적으로 1주간에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하고서(제53조), 이러한 연장근로와 야간근로·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서 법정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했으니(제56조),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은 법정수당을 통해서만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에 관한 규제는 통상임금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실제로 그랬다. 이 나라에서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부터 1주간 48시간, 1일 8시간의 법정근로시간·노동제를 도입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제가 행해져 왔다. 법정근로보다 가산된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법정 외 근로를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제도의 취지라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법정근로보다 50% 가산된 임금을 법정 외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라면 근로기준법의 법정수당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법정근로보다 50% 가산된 임금을 법정 외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어도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통상임금을 파악해서 고용노동부는 예규와 행정해석을 하고, 법원은 판결해 왔으며, 노동법 교과서는 해설해 왔다. 법정근로를 하면 지급받게 될 임금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여금을 법정 외 근로의 대가 임금인 법정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를 50% 가산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 투쟁은 그 존재 이유를 이해해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할 수 있도록 그 취지를 파악해서 그 취지대로 법정수당제도가 기능하게 하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수많은 통상임금 소송은 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또한 문제의 신의칙 법리를 판결했다.

4. 법원의 신의칙 법리는 노조에 대한 비난이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면 곧바로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에 신의칙 위반이라고 판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시간에 관한 권리를 보호해야 할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사용자의 신뢰를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이라며 노동자권리로 추가임금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권리를 두고서 모르고 합의해 줬다는 것이 변명의 말이 될 수 있어도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은 법이 보장한 노동자권리보다 높은 수준의 권리를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하라고 존재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 노동자권리를 위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했다(제33조). 법원이 아직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어도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법보다 우월할 노동자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주장해야 했다. 노동조합의 일이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여금을 제외하고서 사용자와 통상임금에 관해 합의해 왔다. 노동조합의 일을 포기한 것에서 나아가 노동자권리를 포기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비난받아야 했던 것인지 모른다.

5. 더는 변명의 말을 할 수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2013년 12월18일 이후에는 노동조합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 위해 주장하고 투쟁하는 일 말고는 노조가 할 일은 없다. 단위노조든, 연합단체든, 총연합단체든 무엇이라도 그것은 자신의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그 일을 한 것일까. 법정근로보다 50% 가산된 임금을 지급하게 된다면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종전대로 법정 외 근로를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1월2일 여전히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세계 최장 수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라고 발표됐다.

9·15 노사정 합의에서 노동자 대표로 참여한 한국노총은 통상임금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하기로 합의했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만으로는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가 쟁취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노사정 합의에서는 제외금품에 관해 대통령령인 시행령에 위임해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합의에서 시행령에서 규정할 제외금품을 예시하고 있는데 첫째 근로자의 건강, 노후생활 보장, 안전 등을 위한 보험료, 둘째 근로자 업적·성과 등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미리 확정되지 아니한 임금, 셋째 경영성과에 따라 사후적으로 지급되는 금품 등이다. 이 합의대로 시행령에서 제외금품으로 규정되면 더는 통상임금이라는 논란이 없을 것이니 분명히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하는 셈이다. 그런데 노동자권리는 없다. 재직자조건, 일정근무일수 충족조건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데 대한 합의는 없다. 판례의 신의칙 법리를 비난하는 합의도 없다. 노동자권리 없이 통상임금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하는 일은 노동자권리의 쟁취가 아니라 노동자권리의 포기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권리를 쟁취해 내는 것이 노조의 일이라면 통상임금도 당연한 노조의 일이다. 법과 법원의 판결에 노동자권리를 맡기는 것은 노조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것, 통상임금에 관한 노조의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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