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현 공인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시선)

요 몇 달 새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우리 사회의 웬만한 현안을 덮어 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사실 조금은 놀라우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대중의 움직임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 이슈는 바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이었다. 이 이슈야말로 당분간 파급력이 큰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12월 관련한 입법 문제가 불거지게 되면 그 정도가 극에 달할 것이라 봤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 듯도 하다. 애초 정부가 말하는 저성과자 해고 같은 노동개혁은 대기업 정규직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 국민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노동조합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도 이미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하게 있어 왔던 일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 노동문제가 그저 그렇게 수긍하고 살아갈 만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를 찾아와 상담하는 분들을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이 당하는 처우가 부당하거나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부당함의 정도가 차고 넘쳐 그런 일에 대해서는 불편하다는 정도로 생각한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인식을 했다는 것이 무엇을 바꾸기 위한 행동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권리에 대해 한마디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대부분 쉽사리 아무 일 없듯이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고 이것이 당연한 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런 사례는 먼 곳에서 찾을 것도 없다. 필자 주변에도 그런 노동자들이 많다. 미용업에 종사하는 친구, IT업계에서 종사하는 친구 모두 다 임금과 근로시간·휴가에 부당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개선하려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이 불편하면서도 필자 역시 매번 이러한 불편함에 마주하며 상담하고 있다. 주로 노동자 권리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본래 받았어야 할 임금은 이것이고, 했어야 하는 근로시간은 이것이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단번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모르는 소리하지 마시오." 이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아마도 사용자의 경제적 힘에서 나오는 힘을 모른다는 말이거나, 그런 경험을 당신은 모른다고 하고 싶은 건지 분명 이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에 다소 당황할 때도 많았다. 마치 괜찮은 소식을 전하는 것인 양 이야기를 하다 당하는 일격이니 김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버티셔야 한다"거나 "하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다. 공염불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상담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하셔야 한다"가 아니라 "상태를 잘 관찰하시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있으면 다음에 벌어질 일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그 상황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말한다. 그 지점이 오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말이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최규석 작가의 <송곳>에 나오는 명대사 중 하나다. 필자도 최근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반복되는 불편하다는 인식, 그리고 특정 지점에서 작은 움직임의 반복이 쌓이면 꼭 하나는 제대로 뚫고 나올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적어도 뚫고 나왔을 때 외롭지 않도록 그 옆에 있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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