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이른바 '서울형 청년보장'이 시작된다. 서울시가 5일 발표한 종합적인 청년정책의 이름이다. 신규사업만이 아니라 기존 것과 새로운 것을 아울러 청년정책 전반을 재설계하는 밑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리고 ‘청년보장’을 정책의 브랜드이자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다양한 정책수단 조합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소개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청년보장 제도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가져왔다.

서울형 청년보장에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미취업 청년에게 한 달에 50만원 수준의 소득을 일정 기간 지원하는 핵심 정책이 새로 담겼다. 프랑스 청년보장 제도의 ‘알로카시옹’이 서울에 등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에게 ‘다른 시간’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졸업 혹은 중퇴해 교육제도 바깥에 있는 청년들이 구체적인 대상이다.

이는 특기할 만한 점이다. 시범사업을 거쳐 앞으로 충분히 규모를 키운다면 제도 공백지대에서 불안정한 삶을 이어 가는 청년 구직자·실업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보장 패키지’에 포함돼 있는 뉴딜일자리나 청년공공주택 사업과 결합하면 정책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 기대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청년을 위한 것’이 출시할 때마다 기대보다는 냉소가 앞서는 게 현실이다. 2015년에 벌어진 백가쟁명의 장에서 모두가 청년문제 해법을 내놓았지만, 청년을 명분으로만 이용할 뿐 실제로는 ‘정책강행의 미끼’ 아니면 실천적인 방안이 없는 ‘선언된 정답’들이었다. 청년고용대책으로 둔갑했다가 이제는 소식조차 듣기 어려운 ‘임금피크제’는 어떠한가. 새누리당의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청년들에게 문턱을 높인 ‘개악’이었다.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거창한 목표들 속에 청년의 구체적인 삶과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사자에게 허락된 말이란 결국 스스로의 곤궁함을 증언하는 것에 그쳤다. 반복된 학습의 결과 우리는 이제 수십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수학공식 같은 결론에는 희미한 표정도 짓지 않게 됐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내놓은 새 정책들은 어떠한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청년문제를 단번에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청년이 진입하길 원하는 노동시장 자체에 대한 구조적 대책이 빠져 있다. 지방정부인 서울시가 가지는 한계도 뚜렷하며, 포장지만 그럴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여전하다. 홀로 완벽한 정답이 아니다. 경제·산업 정책 수준에서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 있는 ‘실천’이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32회나 언급했다는 시정연설, 빈 수레가 요란하듯 구호만 남아 버린 노동개혁, 청년 팔아서 한 밑천 챙기고는 ‘청년들이 국가 탓’만 한다는 배은망덕함, 모두 말잔치일뿐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그들이 유일하게 행하는 것이란 청년희망펀드 정도가 고작이다. 청년희망재단도 마침 같은날에 현판식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여러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작은 걸음이 한국 사회 청년정책이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서울형 청년보장'의 출발을 환영한다.

서울형 청년보장은 지난 4년간 서울시정에 참여해 온 수많은 청년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자, 청년정책을 현장에서 실행하며 높은 벽에 직접 부딪혀 온 혁신의 노력을 기록한 보고서다. 서울에서 비로소 작은 매듭을 짓게 된 여러 주체들의 공동실천은 이제 전국의 자치단체로, 동시에 중앙정부로 확대돼야 한다.

청년보장 제도는 고통을 증명한 대가로 주어지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청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에 대한 선언이 돼야 한다. 그것은 기업에게 퍼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청년의 특성에 기초한 사회적 필요에 공공자원을 이전시키는 정책이 돼야 한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서울의 청년정책은 그 방향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와중에 보건복지부는 사업시행을 위해 허락을 받으라 으름장을 놓으며 찬물을 끼얹고 있다.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을 발표했을 때와 비슷하다.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정책의 공백에서 벌이고 있는 노력을 중앙정부가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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