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규모가 4년 만에 다시 상승세로 반전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올해 8월 기준 비정규 노동자는 627만1천명으로 3.2% 증가했다. 2011년 이후 하락세가 끝나고 다시 반등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인다.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도 늘었다.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허용업종 확대를 담은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안이 혹시 시장에 비정규직을 더 많이 사용해도 된다고 신호를 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들은 통계청 통계를 어떻게 해석할까.



정부 정책과 일자리 질이 비정규직 확대 요인

▲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초 공약과는 많이 다른 정책들을 펼쳤다. 그런 정부 정책들에 의해 비정규직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시간제 일자리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에서도 뚜렷하게 늘어났고,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도 상당히 늘었다. 시간제 일자리를 고용률로 비례해 확대시킨 정부 정책 효과가 이렇게 나타난 게 아닌가 판단한다.

두 번째로 청년·준고령층의 취업상 어려움이 비정규직으로 연결돼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노후소득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층은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가능한 일자리는 취약근로, 즉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자영업을 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경우도 주변부 일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청년층은 '열정페이' 일자리나 아르바이트 일자리로 흘러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 규모를 키우는 요인으로 볼 수 있겠다.

통계를 보면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현재 노동시장 상황은 오히려 정부가 말하는 방향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비정규직이 여전히 남용되고 있고, 그 질이 개선되기보다는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을 더욱 확대하는 측면도 있다. 정부가 고용유연화 정책을 바꿔야 한다.

비정규직 정의 현실화해 착시현상 없애야

▲ 이광호 한국경총 고용정책팀장

우리나라의 경우 무기계약을 체결하고 정규직과 동등한 처우를 받더라도 전일제가 아니라면 무조건 비정규직으로 분류됨에 따라 여러 가지 착시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한 정규직 근로자조차 통계상 정의로는 시간제, 즉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부작용이 잘 드러난다. 올해 8월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지난해 8월에 비해 19만명 늘어났지만, 시간제 근로자는 이보다 더 많은 20만명이 늘어났다. 시간제를 제외한 다른 비정규직 규모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더군다나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상승률은 6.5%로,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상승률 3.5%의 두 배에 가깝다. 이는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이 활성화 되고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착시현상을 해소하고 근로자의 고용형태를 보다 현실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비정규직과 같은 모호한 기준이 아니라 선진국과 같이 무기계약직과 유기계약직으로 구분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복집계되고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는 현재의 고용형태 분류체계로는 노동시장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불가능하다.

비정규 노동자 늘어난 것은 정부와 정치권 해법 전혀 실효없다는 방증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올해 8월 기준 비정규 노동자가 627만1천명으로 집계됐다. 한국비정규센터는 비정규 노동자의 규모가 1천만명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어 이 같은 결과가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정규 노동자 규모가 늘어난 것은 좋지 않은 징조다. 정부가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개선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해법이 전혀 실효가 없다는 방증이다. 오히려 노동시장 양극화가 더 심화된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용자 중심의 노동정책을 선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충분하게 제기됐다. 최초 취업단계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동일한 노동일 경우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방식으로는 비정규직 규모를 줄일 수 없다. 지불능력이 충분한 재벌 사업장에서조차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중소규모 사업장 문제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가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기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서울시 정도가 그나마 제 역할을 했다. 지금이라도 늘어나는 비정규 규모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여당 앞장서는데 비정규직 증가는 필연적 결과

▲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627만1천명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32.5%로 4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사회보험과 사내복지 적용률은 하락해 차별이 심화했다. 그러나 정부는 차별은 시정하는 척만 하고 오로지 비정규직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기간제 사용기간·범위를 늘리고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인 뿌리산업까지 파견을 확대하는 내용의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증가는 필연적 결과다. 정부가 이미 비정규직 확대라는 시그널을 주고 있으니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조건은 물론 각종 복지혜택까지 3중·4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사용자는 고용유연성 확보를 넘어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한다. 말이 좋아 비용절감이지 사실상 착취 확대다. 정부·여당은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반대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시·지속 업무와 생명·안전 업무 정규직 전환까지 뒷전으로 밀어 놓았다.

진정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면 비정규직 확대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 더 이상 비정규직 확대 신호를 산업현장에 줘선 안 된다. 또 고용불안뿐만 아니라 3중·4중의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에 차별시정 신청권을 부여해야 한다. 만약 정부·여당이 내놓은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불행한 사회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 규모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는 뜻

▲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

비정규직 규모가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 년 새 줄어들어 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진영이 비정규직 급증 현상을 얘기하자 정부는 무기계약직이나 사내하청 등 명백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포함시키는 등 규모 축소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수단으로조차 비정규직 규모 증가를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정규직에 비해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다수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체 280여개를 조사한 결과 이 중 10%에 불과한 28개 사업장에서 정규직 차별을 적발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통계청 조사로는 비정규직 차별이 심해지고 있는데, 노동부 근로감독으로는 전혀 적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운운하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일 명분으로만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을 얘기한다. 반대로 실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재벌과 자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대목에서는 눈을 감아 버린다. 진짜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민주노조 말살을 위한 노동개악을 중단하는 것이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열악한 처지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원청 사용자성·특수고용 노동3권을 인정하고, 상시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과 최저임금 1만원부터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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