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지목한 금융개혁을 통해 결국 금융 노동자들에게 칼날을 들이댈 모양이다. "금융경쟁력이 낮은 이유가 노동자 탓"이라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성과주의' 옷을 입고 되살아난 꼴이다. 정부는 금융개혁의 핵심이 은행권을 시작으로 금융권에 성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죄 없는 은행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많이 일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5일 오후 서울 명동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연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 방안’ 세미나에서 나온 얘기다.

성과주의 도입해 고용안정?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업 연공급제 적용 비중(91.8%)이 전산업 평균(60.2%) 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 및 보험업의 기본급 중 호봉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63.7%로 전체 평균 36.3%에 비해 높은 상황"이라며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법제화하는 상황에서 은행권 임금체계 개편이 고용안정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60세 정년연장으로 인해 인건비가 증가하면 인력을 외부화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불안정고용 증가와 중고령자의 고용 단기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은행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인건비를 늘릴 가능성은 적으니, 노동계가 고용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권 교수 주장에 힘을 보탰다. 올해 9월25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17개 국내은행 중 10개 은행의 인사·경영관리부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성과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서 선임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10개 중 9개 은행 관리자들은 “성과주의가 재무적 성과 및 공정한 내부경쟁에 기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 7개 은행은 "성과연동 보상에 대해 직원들이 대체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서 선임연구위원은 “임금의 경직성이 해소되면 은행권의 명예퇴직을 통한 조기퇴직 관행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며 “승진대상자 등에 대한 높은 고과를 부여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 "일 더시키고, 임금 깎자는 것"

노동계는 이날 발제자 3명과 토론자 6명 중 5명이 은행권 성과주의 확산에 찬성하는 사람들로 패널이 구성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금융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대해서도 "엉터리"라고 반박했다.

김민석 금융노조 정책국장은 "설문조사 참여자를 봤을 때 금융연구원 조사는 자료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은행의 인사·경영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라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국장은 "현장을 도외시 하고, 사실상 경영진을 대상으로 성과주의 만족도를 조사한 것"이라며 "성과주의에 대해 현장 은행원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노사와 금융연구원이 공동으로 정확한 실태조사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그는 "성과주의가 은행 경영진의 책임은 외면한 채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의 평균임금은 13억원을 넘었다. 이는 같은해 공공기관 상위 7개 기관장의 평균임금 3억6천만원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김 국장은 "단기 성과주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상품의 불완전 판매를 증가시킬 것"이라며 "은행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임금삭감은 물론 개별 연봉협상을 통한 노조 무력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정부가 생각하는 금융개혁은 회사에게는 제재와 규제 완화, 회사 내부에는 인사평가 등 소프트웨어에 대한 혁신"이라며 "생산성과 보상체계 괴리 등 우리나라 금융의 성과주의 시스템이 낙후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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