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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게재-시민은 억울하다 5] 술 좀 팝시다
편집부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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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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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도시를 설계할 때부터 이 지역은 술을 팔 수 없도록 (휴게음식점만 허용) 지정됐다. 그런데 세무서가 휴게음식점에 술을 팔 수 있는 면허를 부여하면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주류 면허만 믿고 팔아서는 안 되는 술을 팔았던 휴게음식점 상인들이 줄줄이 단속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업종들이 거의 모두 ‘금지’에서 풀려났지만 유독 휴게음식점만 그대로였다. 사실상 일반음식점으로 영업해 온 지 20년인데 왜 술을 팔 수 없느냐며 아우성을 쳐댔다.

휴게음식점에서는 술을 팔지 못한다. 분식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100여명 정도 되는 휴게음식점 사장님들이 모였다는 ○○지역상인연합회 회장단이 호민관을 찾아와서는 “설렁탕과 족발을 파는 집에 술을 팔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자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허가는 휴게음식점으로 받아놓고 인제 와서 술을 팔겠다고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법에서 금하고 있다는데, 호민관이라고 해도 어떻게 ‘해 줘라 마라’ 하겠는가 말이다.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듣기도 전인데, 나의 선입관은 이미 ‘불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영업 허가를 시에서 받으실 때 술을 팔 수 없다는 것을 아셨을 거 아닙니까?” 나의 질문엔 ‘짜증’ 비슷한 게 묻어 있었다.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사안이라도 이렇게 물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호민관을 찾았을까 하는 자세로 호민 행정에 임하리라 다짐했건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엿 바꿔 먹었나 보다. 이런 나의 불순한 의도를 알아챘는지 회장은 곧바로 핵심을 치고 들어왔다. 단 한 방으로 나는 코너에 몰렸다. “만약에 세무서와 시청의 입장이 다르다면 호민관께서는 세무서 말을 믿겠습니까, 시청 말을 믿겠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 하며 잠시 머뭇거리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이곳에 건물들이 세워진 것은 1997년 무렵입니다. 바다를 매립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이곳을 배후 주거단지로 만든 거지요. 보통 4층 내외의 건물들이 허용됐는데, 1층은 근린생활시설로 쓰고 나머지 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근린생활시설이 허용된 1층에는 300개 정도 되는 음식점이 입점했습니다. 그중 약 80퍼센트가 휴게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게 16년 전 얘깁니다. 그럼, 호민관께서는 과연 몇 군데나 되는 음식점들이 그때 주인 그대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음식점 사장들은 바보라서 술을 팔아도 된다고 믿었겠습니까? 영업허가증에 나오는 휴게음식점이라는 말의 뜻은 몰라도 사업자등록증에 나오는 ‘주류 판매 가능’ 이라는 여섯 자는 아니까 그 비싼 권리금을 주고 음식점 장사를 시작한 것 아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어이쿠! 이런 사정이 숨어 있었구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이래서 남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명색이 억울한 사람들 편들라 뽑힌 호민관이 하라는 짓이라곤, 쯧쯧. 급 반성 모드로 바꾸고는 바로 본격적인 조사와 탐문을 시작했다.

시화지구는 1994년 5월 수자원공사가 도시설계 승인을 받은 곳인데 설계에 따르면 4천필지에 이르는 주거지역 중 이주민 단지라고 불리는 곳을 제외한 5개 블록은 모두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다. 그런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용도지역’ 중 하나인 제1종 일반주거지역에서는 제1종 전체 및 제2종 일부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따라서 제2종 근린생활시설인 ‘일반음식점’도 이론상으로는 이곳에 입점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곳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뿐 아니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도 지정된 곳이어서 지구단위계획도 따라야 한다. “지구단위계획에 의한다면 용도지역별로 정해진 기준이라도 이를 변경(조건 강화)할 수 있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인데도 일반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쾌적한 주거환경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처음부터 휴게음식점만 가능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문제만 없었다면 그 누구라도 이 자체를 문제 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제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 세무서에서 휴게음식점에 주류 판매를 허용해 줘 버린 것이다. 사실 세무서의 이런 결정은 실수라고 하기에 좀 어이가 없는 구석이 있다. 통상 사업자등록증을 받으려면 영업허가를 먼저 받고 허가증을 첨부하는데, 바로 이 영업허가증에 떡하니 쓰여 있는 ‘휴게음식점’이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금 더 걷으려고 그랬을 수도 있을 테고, 정말로 담당 공무원이 실수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고(2010년까지 무려 13년간이나 실수를 했다고 믿는다면), 아니면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일 수도 있을 거지만, 아무튼 이 엄청난 ‘착각’이 부른 재앙은 고스란히 200곳이 넘는 휴게음식점 사장님들에게 전가됐다.

저녁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할 상가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마침 저녁을 혼자 해결해야 할 상황이 생겨 핑계 삼아 문제(?)의 시화지구 먹자골목으로 향했던 것인데, 이러다 밥 굶기에 십상인 듯 보이는 가게가 부지기수였다. 상인연합회 회장이 운영하는 가게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테이블의 반 정도는 차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는 삼계탕을 시켰다. 폐가 될 듯싶어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했는데, 식사를 마칠 무렵이 돼서야 나를 발견했는지 회장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간 밝힌 단속에 얽힌 에피소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한번은 삼겹살 3인분과 소주 몇 병을 먹은 청년 두 명이 계산도 않고 그냥 나가기에, 붙잡고 왜 돈을 내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이 가관입디다. ‘신고하세요’, 이러는 겁니다. 그럼 자기들은 불법으로 술 판 것을 신고하겠다나요. 그래서 ‘왜 불법이냐’ 하고 따졌더니 이 동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겁니다. 휴게음식점에서는 술을 팔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냥 돈을 받지 않고 보냈습니다. 기가 막혀도 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단속이 되면 영업정지와 벌금은 기본일 텐데 돈 몇 만 원 벌겠다고 어떻게 싸웁니까.” 그의 증언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 이런 일이 흔했다고 한다. 분을 이기지 못해 손님하고 싸워 엄청난 손해를 입은 사장도 있고, 종업원이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통에 결국에는 문을 닫은 사장도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물을 차례였다. 단속이 처음 시작된 배경이 궁금했다.

“주류 면허가 있었으면 단속을 당해도 항의할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계셨는지….”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2003년부터 단속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도 처음 6년 동안은 단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속을 받으니까 기가 막혔겠죠. 항의도 하고 시에 가서 소란도 피우고 그랬다고 합디다. 그렇다고 법에 안 되게 돼 있는 걸 어쩌겠습니까. 벌금 내고 영업정지 당해야죠. 그래도 1년에 몇 건 아니니까 상가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좀 잠잠해지다가 또 일이 벌어지고, 뭐 이런 식으로 또 6년이 지나갔는데, 그사이 주인들이 바뀐 거지요. 저도 그 무렵 이 집에 세를 얻어 들어왔습니다. 그랬는데 2010년도에 큰 사건이 벌어졌어요. 세무서에서 주류허가를 일괄 취소해 버린 겁니다. 그나마 남은 안전판이 사라진 거지요. 아니나 다를까, 2011년에는 무려 서른한 곳이 단속을 받았습니다. 기본이 영업정지 3개월이고 벌금은 따로 내야 했습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그러나 시 입장을 확인해야 비로소 완전한 진실과 마주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때까지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시는 이제껏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이렇게 많은 분이 관련돼 있다면 이미 문제를 알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입장인지가 궁금한데요.” 종착역에 다다랐다고 느꼈는지 회장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그만큼 눈빛은 더 간절해 보였다. “2009년도에 지구단위계획이 변경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음식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종(제2종 근린생활시설)이 풀렸습니다. 카센터나 PC방이 그때 허가됐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 우리가 잘못 대응한 겁니다. 당연히 우리도 되겠지 하고 더 세게(?) 나가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던 셈이죠. 다른 업종은 시청 앞에서 데모도 하고 했다는데 우리는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으니 우리 의견이 반영됐겠습니까. 아무튼, 지금 시장님도 ‘왜 그때 허용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단위계획이 5년에 한 번씩 변경된다는 점입니다. 내년이나 돼야 허가를 받든지 말든지 결정된다는 얘긴데, 공무원들은 늘 ‘기다려보자’는 말만 하고 도대체가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다가 호민관 제도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힘을 좀 보태 주십사 부탁하기 위해 들른 겁니다.”

1997년에 시작된 기나긴 얘기치고는 결론이 싱거웠다. 지구단위계획 변경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것도 아니고 계획을 변경할 때 그냥 일반음식점만 포함해 달라는 요구였으니. 조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법에서 정한 용도지역에 부합한 업종이고 다른 업종과 비교해서 특별히 배제돼야 할 위해시설도 아니라면, 더구나 정부기관 간 혼선으로 근 15년을 억울하게 지내 온 정상을 참작해서라도 일반음식점 허용은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 생각했다. 이왕 마음먹은 거 서두르기로 했다.

그 후

“비록 시흥시의 행정처분(휴게음식점 허용)이 적법했다 하더라도 B블록 휴게음식점의 불법행위 원인이 상당 부분 주류 판매를 허용한 세무당국에 있는 한 이를 근거로 한 상인들의 주장(장기간 지속된 불법 상태 해소를 요구)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보이는 바, 신속한 절차 진행을 통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B블록에 일반음식점 영업을 허용)함으로써 잠재적 불법 상태가 조속히 불식되기를 희망합니다. 동 계획 변경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해당 기관(위원회)에 본 시민호민관 의견을 전달할 것을 주문합니다.”

오랜 고질적 집단 민원을 해결할 기회라고 판단한 시흥시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호민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신이 전해졌다. 법률이 정한 절차가 있어 내년 이맘때가 돼야만 완전한 해결을 볼 수 있겠지만 질긴 민원의 역사는 이미 종결을 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2014년 11월12일, 드디어 시화지구(정왕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 공고가 났다. 이제부터는 일반음식점도 합법이다. 물론 술도 팔 수 있다. 아쉽다면, 너무 오래 걸렸다는 점이다. 고충민원을 접수한 지 1년하고도 7개월이다. 첫 장사를 시작한 기준으로는 17년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났으니, 앞으로는 행운의 여신이 이곳에 깃들기만을 바라고 바랄 뿐이다.



[일반음식점 설치]
용도지역 중 제1종 일반주거지역 내에서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일반음식점 포함)을 설치할 수 있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76조 및 동법 시행령 제71조)
허가를 받거나 신고한 영업 외의 다른 영업시설을 설치하거나 다른 행위(휴게음식점 영업자가 손님에게 음주를 허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식품위생법 제44조제1항 및 동법 시행규칙 제5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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