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근로시간. 취업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취업이 희망사항인 이 나라 청년이 꿈꾸는 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나라별 연장근로시간 통계를 발표했다. “韓 근로시간 OECD 2위 … 독일보다 연간 4개월 더 일한다”, “작년 2천124시간 … OECD 평균보다 주당 6.8시간 많아” 한 언론사가 보도한 뉴스 제목이었다. 내 관심을 낚아채기에 충분한 제목의 기사였다. 꿈꾸는 시간이 OECD 2위 수준으로 넘쳐나고 있다니 나 말고도 이 나라 청년들도 관심을 갖고 읽어 볼 만한 뉴스일 것이다.

2. 11월2일, '1인당 평균 실제 연간 근로시간'에 관한 OECD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시간제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의 1인 평균 근로시간은 2천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34개국 중 멕시코(2천228시간) 다음으로 장시간이었다. 미국(1천789시간), 이탈리아(1천734시간), 일본(1천729시간), 영국(1천677시간), 프랑스(1천473시간), 덴마크(1천436시간), 노르웨이(1천427시간), 네덜란드(1천425시간), 독일(1천371시간)이었다. 이는 자영업자까지 포함한 것이나, 우리의 경우 자영업자가 실제로 노동자와 그 지위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굳이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순수하게 임금노동자만으로 살펴보면 이보다 다소 적은 2천57시간으로 집계됐다. 이상을 통해서 보면 한국인들은 OECD 회원국 평균(1천770시간)보다 연간 354시간 더 많이 일해서 주당 평균 6.8시간 더 일한다고 분석됐다. 가장 짧은 나라 독일은 1천371시간에 불과한데, 이는 한국인이 8개월 일한 것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연간 4개월을 더 일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과 같이 일한다면 이 나라는 지금보다 50% 많은 취업자가 필요한 것이다.

3. 이 나라에서 주5일제 사업장에서 법정공휴일에 쉬는 노동자에게 2014년 휴일은 토·일요일 104일과 법정공휴일 10일, 전국동시 지방선거일 1일을 합쳐 115일이었다. 여기에 평균 20일의 연차휴가를 합하면 연간 135일이 휴일·휴가인데, 기타 생리휴가·산전후휴가·육아휴가·하기휴가·경조휴가, 회사 및 노조 창립일 등을 최소 수준으로 5일을 포함시키면 연간 140일이다. 이를 제외한 근로일수는 225일(365-140)이고, 이를 법정근로시간(1일 8시간)으로 셈해서 보면 연간근로시간은 1천800시간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부터 이 나라에서 실제 근로시간단축의 목표로 설정해 왔던 연간 1천800시간은 특별할 것도 없는 과제였던 것이다. 그저 법과 협약, 회사 규정에서 정한 휴일, 휴가와 소정근로시간대로 일하기만 하면 달성되는 시간이었다. 소정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 이내에서 당사자 간에 정한 근로시간이라고 노동법 교과서는 쓰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법정근로시간보다 짧은 소정근로시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귀족노조·강성노조 운운해도 이 나라 사업장에서 소정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에 불과하다.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라고 법정근로시간을 단체협약·취업규칙에 옮겨 기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법정근로시간인 이 소정근로시간대로 일하기만 하면 이 나라 노동자의 연간 실제 근로시간은 연간 1천800시간이다.

4. 오늘 이 나라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청년일자리를 말하며 임금피크제로 야단법석이다. 공공기관은 이미 신규채용을 임금피크제 도입과 연동시켜 해당 사업장 노동자와 노조에 동의를 압박해 왔다. 공공기관이 아니라도 임금피크제는 청년일자리를 만드는 노동개혁이라고 권력은 선전해 왔다. 그래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면 청년의 고통을 외면한 기득권자거나 기득권자의 대변인으로 낙인찍힐 지경이다. 정년을 몇 년 앞둔 장년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 청년고용을 창출해야 한다는 공익광고가 임금피크제 도입 반대를 사익을 위한 것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이렇게 곰곰이 따져볼 것도 없이 공익이고 세세히 따져볼 것도 없이 사익일 뿐이라고 온 나라를 흔들어 대고 있다. 취업이 희망사항인 청년에게는 더욱 더 그렇게 각인될 것이 분명하다. 정년을 앞두고서 임금피크제가 적용될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거의 대부분 노동자에게는 먼 장래의 일이라서 도대체 얼마나 적용된다고 그렇게 삭감되는 임금으로 신규채용을 한다는 것일까. 정년을 연장하면서 도입하는 임금피크제인데 기존의 것에서 당연히 인건비가 절감된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다. 노동자수에 비례해서 당연하게 인건비가 책정되는 사업장이라면 조금은 납득이 된다. 그런 사업장이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공공기관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사업장들은 그럴 수가 없다. 노동자수는 사업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다. 노동자 추가고용에 따른 매출과 영업이익·당기순이익 같은 경영지표 변동 추이에 따라 그 필요가 객관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부가 몰아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공공기관에 한한 것이 아니다. 일반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 어떻게 청년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인지 합리적인 타산도 없다. 그런데도 권력과 자본은 미친 듯이 몰아붙이고 있다. 이대로면 주요 사업장 대부분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인가. 내년이면 청년이 ‘헬조선’을 말하는 이 나라는 청년의 실업문제를 해결해서 더는 ‘헬조선’을 면하게 되는가. 그런데 도무지 나는 아니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도대체가 나는 위와 같이 의문이 들 뿐이다. 청년에게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가. 그러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 줘야 한다. 그런데 이 세계 최장 수준의 근로시간의 나라에서 변죽만 울리지 않는다면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5. 2014년 취업자수는 지난 1월14일 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천599만9천명으로 약 2천600만명이었다. 위 OECD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1인당 평균으로 연간 2천124시간을 일한 것이다. 이들이 법과 단체협약·취업규칙이 정한 대로 휴일·휴가와 법정(소정)근로시간을 일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연간 1천800시간 정도이니 1인당 연간 324시간을 초과해서 일한 셈이다. 이 초과시간만 휴일·휴가를 사용하고 법정(소정)근로시간만 일한다면 약 3천68만명이 일해야 한다. 그러니 법정(소정)근로시간만 준수해 취업자들이 일했더라면 지난해 약 468만명의 일자리가 부족했던 거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로 절감되는 인건비로 채용할 일자리가 얼마인지 제대로 분석한 자료를 아직까지 나는 보지 못했다. 몇 만명, 아무리 해도 10만명을 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근로시간은 곧바로 일자리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단축되는 근로시간에 정비례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청년일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6. 9·15 노사정 합의는 근로시간단축에 관한 사항도 있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정비’를 위해 2020년까지 전 산업 노동자의 연평균 실근로시간이 1천800시간대로 단축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1천800~1천899시간까지 단축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협력’하기로 한 것일 뿐이니 과연 노사정이 협력해서 2020년까지 실현하게 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법정(소정)근로시간 대로 일한다면 이미 1천800시간 이내로 실근로시간이 된다. 그런데도 노사정 합의에서는 이를 준수하도록 하지 않고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하고, 그것도 특별연장근로로 8시간을 추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으니 주당 60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OECD의 2위라는 이 나라 취업자의 연평균 근로시간 2천124시간이 넘고도 남는다. 사용자는 주당 6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일자리만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될 일이니 그것으로 얼마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7. 이상을 통해서 나는 보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고 청년의 일자리를 만드는 근로시간은 없다. 법은 그 이상을 일을 시킬 수 없다고 법정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으로 규제할 수 있는 근로시간은 없다. 사실 이 나라에서 오늘 청년의 실업문제는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했더라면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적어도 심각한 문제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청년을 위해서 우리는 근로시간을 말해야 한다. 아무리 지금까지는 법정근로시간이 유명무실이었을지언정 앞으로는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라고 말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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