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기섭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위원장
9·15 노사정 합의 뒤에도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법 개정 사항인데 정부 지침으로 강행하면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합의 주체인 한국노총도 반대 대열에 선 모양새다. 정부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공공기관부터 적용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정부가 외쳐대는 장단에 민간도 춤을 춘다. 칼춤에 벌써부터 비정규직이나 사무직 노동자들이 떨고 있다. 노동자들이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객관적인 평가없이 노조간부들이 희생될 것

류기섭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위원장



일반해고를 시행하게 될 경우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노조활동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일반해고를 위해서는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공공부문에서는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현재 일부 공공기관에서 저성과자 퇴출제도를 두고 있지만 근 10년간 해고된 이들은 없다.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기 때문에 실제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나오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평가를 하게 되면 사용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기관장 눈 밖에 난 노동자들이 타깃이 될 것이다. 노조간부나 집행부들에게 주로 화살이 돌아갈 것이고 노조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갈등 심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클 것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이 간부급을 대상으로 퇴출제도를 만든 것이 논란이 됐다. 재단은 근로조건 불이익변경인데도 당사자들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제도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고 만만찮은 갈등비용이 들 것이다. 노사발전재단은 간부들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라고 하지만 퇴출제도를 하위직까지 확대하기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벌써부터 시작됐다

김진혁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전략조직실장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아직 제도화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사용자 마음대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하려는 현장이 나타나고 있다. 김해시청에는 교통지도단속·쓰레기불법투기단속·도로보수·환경관리단속 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이 330여명 있다. 이 중 290여명이 지방자치단체노조 김해시청지부에 가입해 있다. 과반수노조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김해시청은 근무성적 저평가자 해고나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강행하고 있다.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안을 지난 9월 시청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가 지부가 반발하자 슬그머니 내렸다.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시청은 다음달 9일까지 분회가 의견을 제시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보겠다는 입장을 공문으로 전해 왔다. 분회 입장 청취는 형식적인 것일 뿐 끝내 강행하겠다는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조와 협의하기로 한 단체협약은 물론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도 김해시청은 무시하고 있다. 그야 말로 박근혜표 노동개악이 김해시청에서 함축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이 같은 행위가 벌써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노동시장 구조개악까지 이뤄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노동자가 살기 위해 정부의 노동개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노예처럼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태 될까 걱정

박기태 사무금융노조 현대라이프생명보험지부 부지부장



현대라이프생명 전신인 대신생명부터 근무한 지 올해로 23년차다. 올해 7월 회사가 실시한 희망퇴직 과정에서 실장급들이 불러 "희망퇴직을 안 하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부서로 보내겠다"고 압박했다. 이를 거부했더니 곧바로 상품개발팀에서 보험금심사팀으로 발령이 났다. 팀에서는 보험금접수 에러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내라는 과제를 주고는 매일매일 평가를 했다. 실무담당자들에게 물어봐도 우리 회사는 보험금 접수 에러율도 높지 않은 데다 하루 한두 건 발생하는 에러 자체가 접수자 실수에 의한 것이다. 인력충원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비용 대비 실익이 없다. 회사도 특별히 이 부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고, 이 정도의 에러는 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보험금접수 에러를 감소시키라는 과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 줄 알면서도 관리자는 매일 불러서 평가를 했다. 왜 이것밖에 못했냐면서 C를, 미흡하다면서 D를 주고 서명하라고 했다. IMF 때도 버티고 견디면서 회사를 지켜 왔는데 한순간에 회사 말마따나 '잉여인력'이 돼 버린 것이다.

회사는 현대카드·캐피탈처럼 주요 직무에만 정규직을 두고, 나머지는 계약직(비정규직)·외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인수된 이후 계약직이 늘고 있으며, 영업지점장들도 계약직으로 뽑고 있는 실정이다. 영업지점이나 본사에 남아 있는 기존 녹십자 출신 정규직들을 희망퇴직이나 저성과자로 찍어 내보내고 싶어 한다.

지금도 사측에서는 언제라도 노동자들을 해고시킬 수 있는 상황인데, 갑질하는 경영주로부터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나서서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겠다고 하니 우려스럽다.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 경우 사측에서는 노조나 자신들에게 껄끄러운 요구를 하는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노조 무력화는 물론 노동자들은 사측에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고 경영주가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기업에게 노동자 생사여탈권 쥐어주는 꼴

노명래 사무금융노조 HMC투자증권지부장



HMC투자증권은 지난해 4월 노조가 결성된 후 지부장 고소를 시작으로 노조를 탄압했다. 같은해 7월 직원의 30%를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했고, 이 과정에서 회사가 직원들을 퇴사시키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ODS(방문판매조직) 부서를 신설했다.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안 하면 ODS로 보내고, ODS로 가면 외부로 ‘뺑뺑이’ 도느라 괴로울 것”이라고 압박했다. 희망퇴직 후 곧바로 ODS 부서로 지부장을 포함해 집행부 3명과 희망퇴직을 거부한 조합원들을 강제 발령 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모두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라고 보고, 조합원들의 원직복직을 명령했지만 회사는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냈다. 급기야 올해 1월에는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한다며 의료비·학자금 등 각종 회사복지를 제한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과정에서 센터장실로 직원을 한 사람씩 불러 서명을 강요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데도, 회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 회사가 말하는 저성과자에 해당하는 직원은 모두 ODS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이 됐다. ODS에 배치된 직원 중 2명은 인격적 모독과 절망 속에서 최근 회사를 퇴사했다. 그야말로 회사가 눈엣가시로 보는 직원들을 ODS부서로 보내 저성과자로 만들어 결국 퇴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또 노조설립 1년6개월이 넘도록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각종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노동개악안이 시행된다면 90%가 넘는 노조 미조직 사업장은 물론이고, 기존 노조가 있는 사업장까지 노동탄압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어떠한 신규노조도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노예와 같은 처지로 전락할 게 자명하다. 단순히 노동문제가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협박이자 자본가와 기업들에게 노동자 생사여탈권을 쥐어주는 꼴이다.

HMC투자증권 사례에서 보듯 이번 노동개악은 노동자들에게 저성과자라는 멍에를 씌워 손쉽게 노조를 와해시키고 정리해고를 마음대로 하려는 정부와 재계의 음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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