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대전지방법원 2015.8.13 선고 2014구합104277 판결

1. 사건의 경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계약직 연구원들은 그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일정한 평가를 거쳐 재계약을 해 왔고, 연구소의 비정규직 활용세칙 별표상의 개인평가표에는 재계약 평가를 사업책임자에 의해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3년 6월 어느 날, 연구소는 인트라넷을 통해 전 직원에게 “3인(해당 사업책임자·차상위 부서장·차상위 부서장이 추천하는 해당분야 전문가) 이상의 검토반 운영”을 통해 재계약 평가를 하겠다는 취지의 비정규직 재계약 절차 관련 안내문을 공지했다. 이어 검토반은 그간 재계약에 별문제가 없었던 일부 연구원들에 대해 재계약 가능 점수인 80점에 미달하는 평가점수를 부여하며 재계약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80점 미만의 점수가 기재된 단 한 장의 평가결과표만을 근거로 수년간 근무한 직장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위 연구소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계약갱신이 거절돼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한 연구원은 최근까지 7명이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각 해고자들과 관련한 판정을 할 때마다 수회에 걸쳐 일관되게 연구소측의 계약갱신 거절이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연구소측은 모든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바, 대상판결은 당시 계류 중인 4건의 행정소송(부당해고재심판정취소 소송)사건 중 먼저 선고된 판결 중 하나다.

2. 사안의 쟁점과 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쟁점은 계약직 연구원들의 갱신기대권 존부와 연구원의 갱신거절이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로서, 대상판결의 주된 판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갱신기대권 존부와 관련해 대상 판결에서는, 연구소의 계약직 연구원들 상당수가 계약을 갱신하며 근로한 사실이 있고, 연구소의 비정규칙 활용세칙 등에는 계약직 연구원들에 대해 평가를 통한 재계약 절차와 그 활용 종료 사유들을 규정하고 있어 계약직 연구원으로서는 비정규직 활용세칙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재계약될 수 있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계약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존재한다고 봤다.

또한 갱신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① 연구소가 마련한 비정규직 활용세칙상의 재계약 평가는 해당부서 사업책임자의 평가절차를 거치게 돼 있으므로, 정당한 이유 없이 위 평가절차에 해당부서 사업책임자의 평가절차를 형해화시킬 정도로 차상위 부서장, 차상위 부서장이 추천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 등이 포함된 검토반의 평가절차를 추가하는 경우 그러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는 점 ② 연구소와 전국공공연구노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에서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 해당하는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개정하고자 할 경우에는 조합과 합의를 거치도록 돼 있고, 인사규정 또는 이와 관련된 제도 등을 작성 또는 개정하고자 할 경우에는 조합과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 비정규직 활용세칙은 적어도 위 단체협약이 규정하는 인사규정 또는 이와 관련된 제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함에도 전국공공연구노조의 협의를 거쳐 개정됐다고 보이지 않는 점 ③ 검토반의 평가결과표 자체에 의하더라도 피평가자(참가인)는 수리생물학팀 소속임에도 해당 사업책임자 외의 다른 평가자들은 모두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거쳐 이 사건 갱신거절을 한 것으로 볼 수 없어 그 갱신거절은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른 해고자에 대해 같은 날 이뤄진 대전지법의 또 다른 판결 역시 그 판시 취지는 대동소이했다. 위 판결들은 연구소측이 불복하지 않아 모두 확정됐으며, 다른 해고자들 4명과 관련해 계류 중이던 다른 행정소송 2건도 연구소측이 모두 소를 취하해 대상 해고자들 일부는 이미 복직된 상황이다.

3. 대상판결의 의미

위 판결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상판결은 연구소측이 소송과정에서 “연구원들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4조제1항 단서 각호에 의해 2년 초과근무시에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지 않는 근로자들로 규정된 자들이므로, 위 기간제법 입법취지와 그 이후의 판례경향을 고려하면 연구원들에게는 기존에 판례법리를 통해 인정돼 왔던 갱신기대권에 대한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거나 “연구기관 설립목적, 연구사업 특성 등을 고려해 계약직 연구원들의 갱신기대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여러 주장을 했음에도 이런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기존의 갱신기대권 관련 법리 적용을 통해 계약직 연구원들의 갱신기대권 존재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의미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에서는 대법원이 2011년 7월2일 선고한 판결(2009두2665) 등을 인용하며 재계약 내지 계약갱신의 요건 및 절차에 관한 부분은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어서 관련 규범은 사용자와 근로자를 규율한다는 점을 전제로, 평가절차나 평가권한자 등을 규정하고 있는 취업규칙에 반하는 평가나 단체협약에 반해 노동조합 동의권이나 협의권을 무시하고 행해진 인사규정 개정과 그 규정에 기한 평가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인사규정 개정이나 계약갱신을 위한 평가절차 등이 연구소측의 인사재량권 행사 등에 의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 결정규범인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에 의해 규율돼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로 위 해고자들과 관련한 노동위원회 심문과정에서 한 위원이 연구소측에 피평가자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질문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연구소측의 한 관리자는 개인적인 입장임을 전제로 “피평가자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에 재계약을 할 건지 안 할 건지를 정하고, 점수배분을 할 것이다. 제가 평가하면 그 방법 외에는 택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사실상 평가자 입장에서도 평가점수 부여의 근거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 두고 그에 맞춰 평가점수를 배분할 수밖에 없다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것인데,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평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평가방법의 근본적 문제점과 더불어 더욱 큰 문제는 그러한 평가점수의 불공정성 여부를 사후적인 권리구제수단을 통해 다투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다는 점이다. 위 관리자의 진술과 같이 정당한 평가를 통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두고 그에 맞추어 평가점수를 배분하는 것이 공정한 평가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나, 해당 평가표에는 평가점수 숫자 몇 개만이 표시돼 있을 뿐, 평가자의 마음속에만 있는 위와 같은 점수부여 동기는 전혀 표시돼 있지 않다. 결국 위와 같은 점수부여 이유는 해당 평가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해고 근로자도, 평가의 공정성 여부를 가리는 법관도,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평가점수는 인사권자인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라는 등의 이유로 쉽게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요새 소위 ‘저성과 근로자 해고제도’ 관련 논의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겠으나, 위 사건에서 평가제도의 불공정성 여부를 다투어 온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저성과자 해고 여부 결정을 위한 평가제도라는 것 역시 위 연구소측 관리자의 진술처럼 “평가자가 이미 해고대상자인지 여부를 정해 놓고 그에 맞춰 평가점수를 배분해 저성과자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대한 권리구제도 사실상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할 때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소위 ‘쉬운 해고제도’ 도입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회 일각의 주장과 그 우려 지점이 그대로 타당해 보인다는 점을 (위 대상판결 내용과 직접 관련된 부분은 아니나) 밝혀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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